헌재, 입법 판단 정당 전원일치…"문화적 다양성 보존해야"

[중부매일 이성현 기자] 헌법재판소가 도서 할인 폭을 제한하는 '도서정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헌재는 20일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도서정가제란 도서 정가를 정하고 그 정가에서 일정한 비율 이하로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이다. 정가 15%(가격할인 10%와 간접 할인 5%)를 넘는 가격할인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한 것으로 2014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날 헌재는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출판산업과 독서문화가 상호작용해 선순환하는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조성하려는 이 사건 심판 대상 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종이책 매출이 감소하고 지역 서점의 매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인터넷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 도서정가제와 같은 독과점 방지 장치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이 출판물 시장에서 자본력 차이를 그대로 방임할 경우 지역 서점과 중소형출판사 등이 현저히 위축되거나 도태될 개연성이 매우 높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 축소로 이어진다"며 "가격할인 등을 제한하는 입법자의 판단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지식문화 상품인 간행물에 관한 소비자의 후생이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득에만 한정되지는 않고 다양한 관점의 간행물을 선택할 권리 등도 포괄하므로 전체적인 소비자후생이 제한되는 정도는 크지 않다"고도 했다.

출판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도서를 자유롭게 할인하게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간 도서를 가격할인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해 간행물 유통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 차이로 인해 신간 도서의 제작·판매가 위축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형 서점에만 정가 판매 등 의무를 부과하면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조차 가격할인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다수의 중소형서점은 시설과 서비스경쟁력에서는 대형서점에, 가격경쟁력에서는 강소형서점에 뒤처지는 등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경쟁환경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릴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전자책을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로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자출판물과 종이출판물은 상호보완적 관계"라며 "전자출판물에 대해서만 심판대상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종이출판산업이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헌재 판단에 대해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문화와 책 생태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라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전자책에 대한 도서정가제정책 적용 방식에 원칙이 잡혀, 저작자와 출판사들의 저작물 창작과 유통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이를 본 누리꾼들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격 경쟁을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냐", "출판계말고는 소비자만 손해보는 악법" 등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웹소설 작가로 온라인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업체 설립을 준비하던 중 도서정가제로 인해 책 시장이 위축됐다며 2020년 헌법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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