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세이] 김병연 수필가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을 가운데 골목 마지막 '검은 양철집'이라고 불렀다. 유년시절이나 지금이나 안방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앞집 지붕위로 솟은 감나무다. 감나무의 덕성이라면 끈질긴 생명력으로 '장수(長壽)나무'라는 것이다. 소년시절에나 지금이나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이다. 100여년 풍상을 견뎌온 생명력이 신비롭고 경외(敬畏)스럽다.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날이면 우리 집에 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쉼터로서 안성맞춤이요, 겨울날 눈비비고 일어나 안방 문을 열면, 밤새 소리없이 내린 눈으로 온통 은백색인데, 그 감나무는 동화속의 전설을 연상케 한다.

'언년이'라면 충청도사투리로서 어린 계집아이를 통칭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큰집 조카딸 '언년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방 전 아버지는 아홉 살 '언년이'를 데리고 20리나 떨어진 논에 가서 모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가자면 새벽에 출발하여 다섯 개 마을을 거쳐야 했다. 강을 건널 때는 지게에 '언년이'를 지고 건넜다. 하루 종일 군소리 하나 없이 시키는 일마다 어찌나 잘 하는지 '언년이'가 기특하기만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강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였다. 고민한 끝에 아버지는 용단을 내렸다. "'언년아'! 소꼬리를 쥐어 줄 테니 절대로 놓치지 마라! " 라고 단단이 당부하였다. 그리고 소에게는 "이놈아! '언년이' 목숨이 네게 달렸다. '이랴!'"라고 호통을 쳤다.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소는 '언년이'를 꼬리에 달고서는 유유히 건널 수 있었다. "강변에서 추워서 떨고 있는데, 꼭 물에 빠진 생쥐 같더라!"라고 회상한다.

그 누님이 열한 살 때 우리 부락에도 초등학교가 생겨서 남들은 입학을 하였으나, '언년이'는 너무나 착실하여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열아홉이 되자 우리 동네 오씨(吳氏)집안으로 출가하였는데! 그 집이 바로 우리 앞집이다.

앞집 매형은 비록 체격은 작지만 마음만은 바다와 같았다. 대구에서 왔다는 떠돌이 소년이 콩 자루를 훔쳐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소행이 괘씸하여 나와 매형은 뒤쫓아 그를 잡았다. '대구까지 갈 차비가 없어서!'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측은하여, "네가 다 가지고 가면 우리는 금년에 심을 씨앗이 없으니 우리 서로 절반 나누자!" 라며 나눠줬다.

얼마 후" 병연아! 나 안 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매형은 황달(급성간염)로 세상을 떴다. 그때 누님 나이는 42살! 아들 다섯에 딸 하나, 6남매(男妹)의 운명은 온전히 누님의 몫이었다.

지난겨울 '언년이' 누님 구순(九旬) 잔치가 있었다. 오씨(吳氏)집안으로 출가한 지 72년, 남편과 사별한 지 50년 흘렀다. 누님 혼자손으로 6남매 모두 읍내 고등학교까지 교육시키고, 짝을 지워 성가(成家)시켰더니, 그동안 불어난 식구들이 33명이요, 증손(曾孫)만 해도 8명이나 된다고 한다. 6남매들이 하나같이 그 모친을 닮아 품성이 바르고 효자들이다.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건강이 걱정이다. 농삿일로 다리가 상하여 80이 되면서 걷지를 못하는 바람에 바깥출입을 못하게 되자! 성경(聖經) 필사(筆寫)에 전념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쟁쟁하며 정신은 예전같이 초롱초롱하였다. 슬하 33명이라는 그 많은 식구들 가운데 단 명도 잃거나 사고가 없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만하다. 이것은 누님의 공덕이요, 하나님의 은총이랄까!

금년 들어 공무원으로 퇴직한 넷째 아들이 읍내에 전원주택을 짓고는 '함께 살자!'고 보채기에 그 마음이 하도 고맙고 기특하여 따라갔다. 탑선리에서 태어나 한 부락으로 출가하여 70년 살았던 이집인데! 난생 처음 90년 만에 첫출향(出鄕)이다. 그래도 성경과 필사공책은 가슴에 안고 떠났다고 한다.

김병연 수필가
김병연 수필가

이제는 감나무 혼자서 100여년의 풍상이 서린 빈 집을 지켜보고 있다.

90년만의 첫 출향(出鄕)! 성경과 함께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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