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

'희생양 이론'이란 사회학 용어가 있다. 사회적 재난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의 일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조직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인간 사회는 조직의 유지와 생존을 위해 속죄양(Scapegoat)을 만들어 공동체의 안정을 지켜 왔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폴리스 밖에서 몇 사람을 제물로 처형했던 경우나, 일본 관동 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우리 재일동포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7월의 폭우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주기적인 장마철 폭우일 거라는 안이한 생각과 대처가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점도 그렇지만,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충격적이다.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사안이고, 희생자와 유족들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은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해의 원인이 인재(人災)라고 추정됨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재난이 책임자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되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책임자 색출에만 급급하면, 위기의 본질이 가려지고 비극적 참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희생자 유족과 이재민에 대한 치유와 복구가 먼저고, 다음으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마지막으로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다. 이번 청주지방에 내린 비는 7월 13일부터 3일간 474mm에 달하는 집중적인 폭우였다. 지난 30년간 청주지역 장마철 평균 강수량 344mm을 압도하는 집중호우가 3일간 내린 것이다. 장마철, 엘니뇨가 겹치면서 집중적인 폭우가 예상된다는 경보가 제기되었지만, 이렇게 피해가 크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기상이변의 배경에 기후 위기가 있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로 굳혀지고 있다. 기상전문가들은 기후 원인으로 한국의 강수 패턴이 강수일은 줄어들면서 강수량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호우 피해의 80%를 차지하는 '극한 호우'(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3시간 90mm 도달)가 늘어날 것이라 예측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폭우와 폭염은 우리 한국의 일만은 아니다. 벌써 이탈리아 북부지방이 집중적인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고, 인도 뉴델리와 미국 북동부 지방 역시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폭염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지구 곳곳의 소식도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기후 위기가 촉발한 기상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새로운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전의 기상 패턴을 근거로 한 대응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져야 하고, 재난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정부 중심의 재난 담당 부서도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처럼 정부의 여러 부처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시스템으로는 재난관리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경보시스템과 배수처리 등 시설인프라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디지털 기반의 재난관리시스템 개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은 공동체의 갈등을 잠재우기는 하지만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재난에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기후 위기에 대비해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재시스템의 새로운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난 예방은 국민의 생명을 지킬 뿐 아니라 천문학적 복구비용도 절감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은 이제 좀 더 성숙해져야 하고, 그것은 선진국의 품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