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남 애국지사 유일 생존

[중부매일 황인제 기자] 충남에 본적을 둔 독립유공자는 모두 1천682명이다.

이중 이일남 의사가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이일남
이일남

금산이 고향인 이 지사는 1943년 12월에는 만주독립군과 접선을 시도하려 했으나 연결되지 못하고 만주의 실정을 알리기 위하여 1944년 12월에 귀국했다. 

그는 국내동지와 연결하고 자금 조달을 할 목적으로 1945년 1월에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하고 있다가 발각되며 일헌병대에 붙잡혔다.

1945년 8월 17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이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김상준
김상준

충남 예산에서 1885년 8월 27일 태어난 김상준 의사는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했다.

대한광복회에 가입한 그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고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해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해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했다.

이러한 활동을 펴던 중 그는 1917년 일경에 붙잡혀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박병양
박병양

1927년 4월 17일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박병양 의사는 1942년 4월 경, 서울 성남중학교 재학 중 항일결사 신진당과 독서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남차랑을 저격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던 중 사전에 발각되며 1942년 12월 붙잡혀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송구용
송구용

1884년 2월 11일 양반가에서 태어난 송구용 의사는 1930년 8월부터는 남일상회라는 곡물상을 경영하며 조직원을 확보했다.

이 일로 붙잡힌 송구용은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윤용주
윤용주

아산 출신 윤용주 의사는 1919년 4월 2일 독립운동단체를 망라한 임시정부의 수립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대회의 회원 되기를 권고받았다.

1919년 9월 서울에서 조직한 조선독립대동단에 가입한 그는 지방단원 모집 담당을 맡아 지방동지의 규합과 군자금 모집 등을 위해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처벌령·출판법·보안법·사기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정진숙
정진숙

1912년 11월 5일 출생한 정진숙 의사는 1944년 10월 23일 오전 자신이 근무하던 조흥은행 종로지점에서 동료들에게 일본의 패전 등에 대해 언급했다. 

이로인해 태평양전쟁에서 '군사에 관한 조언비어'를 만들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45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에게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조신환
조신환

충청남도 서천이 본적인 조신환 의사는 1909년 9월 29일 출생했다.

그는 1930년 4월 화순군 화순읍 읍내 남산공원에 있는 화순 신사의 목재 난간 및 신사 내 나무 등 시설 일부를 파손했다.

이로 인해 1930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건조물 훼괴(毁壞) 및 기물 훼기(毁棄)'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한준
한준

충남 서산이 고향인 한준 의사은 1924년 3월 30일 출생했다. 

서산군 부석면의 공립 소학교 교원으로 재직 중이던 1941년 4월, 동교 6학년 학생 3명이 자기가 담임으로 있는 2학년 교실에 들어와 일본왕 궁성 등의 사진을 넣어두는 봉투가 삐뚤게 걸려있다 하며 바로 잡으려 하자 그들을 제지하면서 일본왕과 궁성을 비난했다.

이를 이유로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41년 7월 23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으로 징역 1년6월을 받고, 동년 9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허경
허경

충청남도 서산이 본적인 허경 의사는 1918년 12월 24일 출생했다.

그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 홍성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 전개를 모색 중이었다.

1937년 7월 23일 그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제도의 모순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모순인 사회 상태를 타파해 진실로 자유 평등한 인류애의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활동해야 함은 우리 청년의 책무"라고 하며, 서울에서 중학교에 들어가 활동하다 홍성으로 돌아왔다.

이에 1938년 5월경 홍성경찰서에 체포되 같은 해 7월 16일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청 검사분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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