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애국지사는 '정정화' 1명

[중부매일 신서희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본적이 세종(연기)인 독립유공자는 모두 46명이다.

포상훈격별로는 독립장 2명, 애국장 2명, 애족장 14명, 건국포장 7명, 대통령표창 21명 등이다.

생존해 있는 유공자는 없으며 여성 애국지사는 1명이다.

황갑수
황갑수

이중 황갑수(1921∼2009) 애국지사는 중국 호남성(湖南省)에서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돼 활동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임우철
임우철

임우철(1920~2021) 지사는 동경 공옥사고등공업학교 입학 후 동급생들과 함께 1942년 12월까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귀국해서는 한국인만의 회사를 설립해 민족자본을육성하고 공업학교의 교원이 돼 청소년을 육성했다.

특히 한국어를 널리 보급해야 하며 궁성요배(宮城遙拜)는 불필요하다는 등 민족의식을 함양하다가 붙잡혀 1943년 12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위반과 불경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정정화
정정화

여성인 정정화(1900~1991) 열사는 시부(媤父)인 대동단(大同團) 총재 김가진을 따라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상해로 건너갔다.

정 열사는 1930년까지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을 위해 6회에 걸쳐서 국내를 왕복하면서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932년에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가 절강성 가흥으로 이동함에 따라 김구 선생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도왔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진만
유진만

유진만(1912~1966) 의사는 1932년 1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애국청년들의 항일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한인 청년당(韓人靑年黨)을조직하는 한편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에도 가입해 무장의열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1932년 7월 1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예비, 치안유지법 및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수욱
이수욱

이수욱(1890 ~ 1970)열사는 1919년 3월 13일 읍내리 시장으로 가는 길목인 갈정리(葛井里) 고개에 나아가, 장터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됐다. 그는 이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추경춘
추경춘

추경춘(1889~1940) 열사는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全義面 新井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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