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생존자 없어

〔중부매일 천성남 기자〕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전이 본적인 독립운동자는 모두 37명이있다. 생존자는 없는 상황이다.

김용원
김용원

대전지역에서 활동한 김용원(1892~1934) 애국지사는 1919년 3·1독립운동 때 상해로 망명해 백범 김 구 선생 휘하에서 경무국원으로 활약했다. 1923년에 국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 1928년 11월 소위 강도교사죄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얻은 지병으로 동년 6월 조국의 광복도 보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김지성(1915~1968) 애국지사는 1932년 적색소년동맹에 가입하고 신문배달반, 노동자반 등을 조직하다가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직원
김직원

김직원(1897~1933) 애국지사는 제4차 만세운동 때인 4월 1일 대전 장날 400여 명의 군중을 규합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했다.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해인
김해인

김해인(1918~2006) 애국지사는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사용금지·신사참배거부·악질 일인교유 배척 등을 전개하는 한편 무궁화 식수장려 및 미신타파 등 계몽활동을 펴면서 민족의식 고양에 힘을 쏟았다. 1942년 9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남상순
남상순

남상순(1926~1978) 애국지사는 1942년 12월까지 30여 차례의 모임 등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1944년 2월,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이상 3년이하의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민충기(1888~1932) 애국지사는 1919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가입했다. 1921년 8월 밀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해 군자금 수합 활동을 펴던 중 동년 10월 일경에 붙잡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에는 전국 각지를 돌며 동지규합 및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쓰다가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박형무
박형무

박형무(1922~1982) 애국지사는 1945년 8월 일제가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국내 침투 훈련이 중단되고 박형무 등 교육생들은 하와이의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자유한인보' 잡지를 만들었다. '자유한인보'는 제7호까지 발간됐는데, 60쪽 정도의 주간행물로 미국사회생활 소개, 독자들의 투고, 한국에 관한 소식을 게재, 2명 앞에 1권씩 배포했다. 이 주보의 편집은 박형무와 이종실·박순동 3인이 맡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송석형
송석형

송석형(1919~2005) 애국지사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특수훈련인 OSS훈련반에서 3개월간 군사 특수훈련 무기반을 수료하고 간부대원으로 임명됐다. 1945년 국내정진군 제2지구 충청도반에서 국내침투공작을 계획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유복영
유복영

유복영(1887~1937) 애국지사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때에는 일본 관헌의 온갖 방해에도 서울에서 내려 온 김병로(金炳魯)와 합동해 구속학생들의 무료변론을 담당에 진력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최철호
최철호

최철호(1915~1941) 애국지사는 1941년 조선의용대는 적후방의 혁명부장대오를 건립하기 위해 대적선전과 유격전을 진행해 전후 수십 차례의 격전을 치렀다. 특히 동년 12월 12일 하북 호가장 전투에서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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