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한두번 거짓말에 대한 기억이 있다. 실제로 10대 청소년의 96%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봤다고 답했다고 하는데 아이의 거짓말은 인지발달과정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뻔히 보이는 서툰 거짓말부터, 거짓말을 하게 된 사실을 알고 나면 나름의 이유가 있기도 해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한 두 번은 귀엽게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횟수가 빈번해 진다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기고 거짓말의 원인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방법을 찾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즉 자신에게 닥쳐올 비난과 질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숙제했는지 물으면, 따라올 잔소리나 비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다 했다", 혹은 "숙제 없다"고 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비난과 질책이 가해지는 상황이 두려워서 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 주기 보다는 결과적인 상황으로 혼이 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면 거짓말을 통해 그때 그때의 위기를 넘기려고만 하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선의의 거짓말부터 사소한 거짓말까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문제될 정도의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어른은 거짓을 은폐하기 위한 작전을 쓴다. 어른의 거짓말은 죄가 되기에 그 상황을 모면할 다른 수단이 필요하고, 이는 대체로 책임회피 혹은 책임전가를 위한 희생양 찾기로 귀결된다.

지난 7월의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특히 오송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많은 이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피해 규모가 더 늘어났고, 정부가 사전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대책이 마련되었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대통령의 일성은 참사의 책임소재 파악에 있는 듯 하다. 오송지하차도 사망에 대해서는 특히 국무조정실의 감찰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대통령의 문책이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전언이 국토부장관을 통해 알려졌다. 경찰이 수사를 한다, 검찰이 수사를 하겠다 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에 청주시, 충북도, 행복청, 환경부, 경찰, 소방 등 참사에 관계된 모든 이해당사조직들은 일제히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말을 하기 바쁘다.

당장 환경부는 미호천이 국가하천이지만 관리책임은 지방정부에 있음을 강조한다.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천 수위의 위험을 구청에 알렸다는 말로 책임에서 한발 물러났고, 적극적으로 이를 알렸다. 비난의 화살을 받은 청주시는 도로관리주체인 충청북도로 눈을 돌렸고,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는 미호천교 개축공사 주체인 행복청을 지목하고 있다. 이때를 맞추어 물관리 일원화로 인해 하천관리 주체인 환경부의 치수능력 부족을 문제로 지적하여 전 정부 까지 관여시키는 모양새다.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결과는 이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책임이 다른 곳에 있노라고 시민의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사건의 큰 축은 미호천 범람과 지하차도 통제, 두 가지일 것이다.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는 원망의 화살을 받은 청주시가 내 놓은 말은 "월권" 이었다. 청주시장이라면 정말 상을 주고 싶은 직원이 아닌가.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을 담당부서에서 그 긴박한 순간에 이처럼 순발력 있고도 국민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공무원상에 딱 맞는 대답을 해내다니!

도로관리 주체인 미호천교 개축공사과정의 제방때문이라는 것을 들어 행복청이 책임주체가 된다 하더라도 건설되는 제방의 구축과 유지를 점검하는 주체는 환경부 금강홍수통제소와 청주시이다. 수위 이상의 징후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신했음에도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물론 기관 내부의 다른 부서에도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주시의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도로통제에 관해서는 도로관리 주체인 충북도와 함께 청주시와 경찰, 충북도 자치경찰의 역할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경찰은 주민 신고가 직접 접수된 상황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실시하지 않았고,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이 신고이후 순찰자의 동선까지 공개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례적이다. 또한 수사의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관할을 따져서 내 할 일만 했다는 청주시와 CCTV화면만 주시했다는 충청북도 관계자의 변명도 선뜻 이해되기 어렵다. 국가는 어떠한가. 국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으니 국가 최고 책임자는 잘못한 사람을 벌주겠다는 말로 그 책임을 다하고, 중앙부처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질타하며 사고 수습에 적극 나서주겠다는 선민의 자세로 갈음하지 않았던가.

관계된 기관들 마다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받을 궁리만 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수정할 중요한 초점들은 슬그머니 뒷전에 감추고 최대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을 지켜보며 걱정되는 것은 또다시 재난을 통한 학습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참사의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밝히는 일은 법적 조항에 대한 위반을 찾아내고 처벌하는 것을 위한일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의 규명을 통해 우리의 현실과 재난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확인하는데 까지 미쳐야 한다. 그러니 법의 책임을 다했을 때, 혹은 처벌을 마쳤을 때까지의 과정으로 끝나야 하는 일이 아니며, 처벌이 두려워 벌벌떨게 되면 참사 앞뒤의 상황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어른의 거짓말 경계에 있는 작전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실무자들은 처벌이 두려워 아무일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복지부동한 상태를 지속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피부서인 재난관리 부서는 더 많은 인재를 잃을 것이다. 문책, 엄벌을 큰소리로 외치면서 마치 사건을 해결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이다.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많은 전문가들이 지난 20년간 지역중심, 현장중심 재난관리를 주장해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인력과 조직, 예산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원인에 대한 차분한 조사와 진정성 있는 반성의 태도이다. 이번 참사의 결말이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 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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