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김호성 / KBS청주 아나운서

빌리 홀리데이는 늘 하얀 치자꽃을 머리에 꽂고 무대에 섰다. 짙은 검은색 우수위로 치자꽃은 하얗게 반짝였다. 그의 재즈는 애절하면서도 절묘했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때로는 흰색이 아니어서 받은 상처와 한을 담아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그 머리위의 하얀 치자꽃은 무대를 통한 항거의 상징이었다.

I'm a fool to want you/ I'm a fool to hold you/ But right or wrong I can't get along/ without you…….
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겠죠/ 당신에게 머물러 있어 달라고 하는 난 바보인 거죠/ 하지만 옳든 그르든 간에 난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 없이는…….

가난한 어린 시절과 반복됐던 열정의 사랑과 실연. 죽을 때까지 자유롭지 못했던 인종차별의 멍에 그리고 마약, 그 속에서 홀리데이는 1959년 44년의 짧은 생을 홀로 마감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한 마지막 유작인 이 노래는 빌리 홀리데이의 가장 대중적인 곡 중 하나로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본국에서의 그의 대표작은 단연 ‘Strange Fruit’와 ‘God bless the child’이다. 이 노래들은 홀리데이의 독특한 해석에 따라 재창조되었다. 특히 Strange Fruit는 다른 가수들이 부를 수가 없었다. 홀리데이가 못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청중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는 홀리데이의 노래로 인정받는 ‘기묘한 과일’

시인 루이스 앨런이 그녀를 위해 지은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린치 당한 흑인이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광경을 묘사한 노래이다.

그 흑인의 처지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했음인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엘라 핏제라드’, ‘사라 본’과 더불어 3대 여성 재즈 보컬로 일컬어지는 홀리데이. 셋 중 그녀는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그 특유의 잿빛 색조를 띈 허스키에 리듬을 타는 절묘한 감정표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그녀만의 모습이었다. 특히 노랫말을 살리면서도 자유자재로 구사한 즉흥 선율은 모던 재즈 보컬 경향을 만들어 그녀 이후의 모든 가수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재즈 여가수 1세대인 박성연, 윤희정에서 대중재즈의 장을 연 최근의 ‘노라존스’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재즈가 음악 명품으로 자리매김한 그 정점에는 바로 빌리 홀리데이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홀리데이 표 재즈를 즐긴다. 그의 블루스 적 창법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음영은 단조풍의 우리 성향과잘 맞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블루스 색채가 깃든 흑인음악을 우리는 즐겨 듣는 것이다. 원래 재즈는 흑인 음악의 전형이 아니다.

1920년 초 재즈는 래그타임, 가스펠, 행진곡 등 서양의 클래식 분위기에 흑인들의 블루스가 융합해 생겨났다.

밴드위주의 열광적 사운드였던 초기 재즈는 뉴올리언즈 항구도시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시카고를 거쳐 30년대 화사한 빅밴드 스윙시대 을 만들며 전 세계로 퍼져갔다

항구도시 뉴올리언즈는 흑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생태학적으로 주로 블루스를 재즈로 연주했고 그것이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며 오늘과 같은 흑인재즈의 전형을 이룬 것이다.

홀리데이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이도 바로 ‘베시 스미스’였다.

지금 우리가 듣는 리듬앤 블루스, 즉 R&B라는 가요 장르도 흑인 블루스 재즈의 한 갈래인 것이다.

그러한 대중가요 소리에 익숙해있는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Am l Blue’ 나 ‘Summer time’ 같은 편안한 블루스재즈를 소화해낸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한국의 젊은층에서는 이러한 재즈가 문화적 계급상승의 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록 보다는 고급스럽고 클래식보다는 쉽고 자유롭다?

빌리 홀리데이의 절망 속에서 핀 한 송이 흰 치자꽃 같은 모던재즈! 오늘날 이 땅의 모던 재즈는 더없이 부드럽게 속삭이듯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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