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종수 / 참도깨비어린이도서관장

오시은 장편동화 ‘나는 김이박현후’(푸른책들)를 읽고

어느 물질이든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있듯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하나의 결정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혼자 뿐인 외톨이라고 해도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가족이라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만큼 소중한 구성요소들로 묶여있는 법이다.콩가루 집안이라고 비아냥거리며 말하더라도 말이다.

오시은의 장편동화 ‘나는 김이박현후’(푸른책들)는 호주제 이야기와 맞물려 생각하면 제목부터 커다란 상징성을 띠고 있다.현후가 그동안 식구라고 믿었던 관계가 ‘동거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지듯 이 사회에서는 그런 관계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없는지,흰옷 입은 민족의 정통성이 어떻고 하며 힘의 논리 비슷하게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뭐든지 바로 놓여있어야 한다는 규율 아닌 규율이 지배하고 있다.

한 식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집을 나가고 이민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일을 아이에게 겪게 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선택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회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넣어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족이란(식구라고 살갑게 고쳐 불러도)모래알 같기도 하다. 험난 세파 속에서 더 단단한 결정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없이 뜯겨져 나오는 시위대와 같다.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가운데 뭔가 따져보고 더듬어보고 다시 이어보는 일을 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 사이에 대화를 터야 하고 굳건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모델,아니 살갑게 이어왔던 모델이더라도 희망을 주어야 한다.

동화가 지나치게 사실동화로 몰려가다 보니 비슷한 소재들로 넘쳐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이 동화에서도 새로 꾸린 가족들이 겪는 혼란과 그것을 해결하는 구조가 비슷하게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가족을 이루는 환와(喚瓦)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피를 나눈 형제만의 이야기를 떠나 입양이나 사뭇 행복해 보이는 가족 사이에도 마지 못해 사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 시대에 다시 쓰는 가족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그 중심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세상의 한복판에서 방황하고 궤도수정을 해야 하는 어린 주인공들이 있기에 가슴 속에 아리게 감추고 있는 말 한 마디부터 꺼내들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동화쓰기의 교과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강한 연대 속에서 소재주의로 갈 수도 있어서 다양한 모델을 찾아내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꾼을 내보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이것이 가족이 해체되고 정체성에 혼란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그동안 쉬쉬하고 있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혼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작가의 시선은 깊은 데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관념에 가까운 말 같지만 좀더 다양한 관계와 정체성에서 나오는 외국동화에 맞설 수 있는,아니 어린 주인공들에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런 것을 다룬 동화책으로 유일하다느니 권장도서니 하는 기득권만으로 어린 주인공들에게 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화방법과 가족 이야기,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그래야 감동없는 시대에 이야기가 살아나고,또 하나의 삶을 보듬어주는 진짜 감동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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