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제목을 보고 순찰차에서 낮잠을 자다가 주민신고를 받은 경찰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므로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극히 일부의 문제있는 경찰관들을 보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 14만 경찰을 싸잡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경찰(警察)이라는 한자는 '경계할 경(警)', '살필 찰(察)'이다. 위험을 방지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살피고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행정경찰, 예방경찰'이 유사한 개념이다. 대조되는 의미로 '사법경찰, 진압경찰'이라는 개념이 있다.

살피고 경계하는 역할은 경찰제도 태생부터 부여된 기본적인 임무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선제적인 예방경찰 활동은 뒷전이 되고 112신고 대응과 사법경찰 활동이 주된 임무가 되었다. 범죄예방과 위험방지를 위해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 제복 경찰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위를 지나가는 순찰차는 볼 수 있어도 서현역 AK플라자처럼 혼잡한 곳에서 제복 입은 경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112순찰차로 신속하게 출동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시민들 속에 함께하는 제복 입은 경찰관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복 입은 경찰은 시민들에게 안심을 주고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정량화하기 쉬운 눈에 보이는 실적은 아니지만 경찰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임무이다.

왜 경계하고 살피는 '경찰(警察)'의 본성이 잠들었을까? 생물체의 기관이나 조직이 시간이 지나면서 생물학적으로 퇴화되는 것처럼 예방경찰도 퇴행적으로 변화했다. 반면, 눈에 보이는 성과중심의 평가와 조직운영은 진압경찰 기능을 불균형적으로 발달하게 했다. 사후 대응 중심의 경찰활동으로 거리에서 제복 경찰관들이 사라졌고, 일상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이 되었다. 시민들의 하루 일상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지역별·권역별 치안수요는 유동적임에도 불구하고 경찰 근무체계와 인력운용은 고정적이고 획일적이다. 제대로 살피고 경계할 수 있는 조직운영이 아니라 전통적 관료주의에 근거한 비효율적인 운영방식이다. 잠들어 있는 '경찰(警察)'의 본성을 깨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찰(警察)의 본성'을 깨울 수 있을까? 우선,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을 조직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원화 자치경찰제가 방안이 될 수 있다. 중앙정부의 관심사나 시국치안에 몰두하는 경찰이 아니라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역 치안문제 해결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시민과 가까운 경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살피고 경계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중심으로 조직을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갖는 자치경찰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 실정에 맞는 '경찰(警察)의 본성'을 일깨워야 한다. '경찰(警察)의 본성'이 깨어 있다면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고정적이고 획일적인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근무체계, 인력운용, 경찰관서 운영체계, 인사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변화에 따른 유동적이고 유연한 조직운영이 필요하다. 유동인구에 따른 이동형 경찰관서, 독립관서·관청이라는 고정관념 탈피, 부서 및 기관별 유연 근무체계, 특정직 경찰공무원 위주의 인력 탈피, 시민과 함께하는 실질적인 치안거버넌스 구축,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측정하는 평가방식의 고도화 등 제2의 창경(創警) 수준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학부 교수

하지만, 개혁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상명하복(上命下服)이나 경찰청 중심의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며 권력자의 입맛에만 맞추려는 조직개편은 경찰조직 존재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위협받게 할 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토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토론 없이 변하는 세상은 없다.' 경찰 혁신을 위한 끝장 토론이라도 열어보자! 지금은 대한민국 경찰혁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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