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한다. 발 빠른 토끼는 시작하자마자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유 있게 뒤처진 거북이를 따돌린 후 느긋하게 잠을 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느릿느릿 기어오던 거북이가 자고 있는 토끼를 앞질러가서 먼저 결승선에 도착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오래 전에 독서지도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토끼와 거북이 그림책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이 이야기를 통해 성실함과 자존감을 강조했던 내게 한 아이가 어린이의 눈으로 이렇게 질문했던 게 기억난다. "왜 토끼하고 거북이가 달리기를 해야 해요?"

그때부터 내겐 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토끼와 거북이가 이런 비극적인 경쟁을 했지?'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다 알 듯이 토끼는 토끼이고, 거북이는 거북이다. 엄연히 걸음걸이가 다르고 각자의 개성으로 창조되었는데 왜 둘이 굳이 경쟁이 붙어가지고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었을까. 토끼는 토끼 그 자체로 소중하고, 거북이는 거북이 그 자체로 소중한데 말이다.

이솝 우화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을 한다. 어느 날 토끼가 비교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북이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자신의 걸음으로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거북이였다. 그런데 토끼가 비교하기 시작하니까, 거북이의 마음속에 상대적 박탈감이 꽃피우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느린 존재인가 봐', '나는 왜이렇게 태어났지' 그러다보니까 화가 난다. 그래서 이 거북이가 마침내는 토끼와 경쟁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거북이 스스로 경쟁과 비교의 고통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3명 중에 1명이 걸려 있는 정신 질환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우리도 토끼와 거북이처럼 서로 비교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경쟁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배가 아파온다. 그리고 마음도 아파온다. 내 위치, 내 자리를 비관하게 되고 분노하거나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지기까지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든 우리네 마음의 모습이다.

스캇 펙의 '평화 만들기'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망해가는 수도원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 수도원을 떠나고, 이제는 다섯 명의 늙은 수도사들만 남아 처량하게 수도원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수도원에 랍비 한 명이 방문을 한다. 이 랍비에게 다섯 명의 수도사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우리 수도원이 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랍비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이 수도원은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다섯 명 중에 메시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여러분 다섯 명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랍비가 떠나고 나서 이 다섯 명의 수도사들은 자꾸 그 랍비의 말이 신경 쓰이게 된다. '정말 우리 중에 메시아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메시아일까?', '저 사람인가? 아니면 설마 난가?' 그러다가 서로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이 수도사들의 마음에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내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까 정말 내 마음에 메시아 같은 사랑의 마음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고, 내가 그런 메시아의 마음에 걸맞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하게 된다. 이렇게 다섯 명의 수도사가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으로 똘똘 뭉치게 되니까, 그렇게 달라진 수도원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이 주어진 상황을 건강하게 바꿔낼 힘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비교와 박탈감과 배제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서로에 대한 존중이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또 어떤 상황에도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끊어지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지금보다 조금씩 건강해지는 이 가을의 순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존중의 힘으로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한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이 가을의 날들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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