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노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유학 시절, 가족 모두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마드리드부터 시작해, 스페인 남부로 내려가다 보니 온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도시를 만났다. 바로 세비야다. 거리에 커다란 오렌지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의 귤나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귤나무가 아기자기한 모습이라면 오렌지 나무는 어여쁜 여인의 싱그러운 웃음 같기도 한 것이 이 달의 탄생화 오렌지 꽃이 생각난다.

신부의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진 하얀 오렌지 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결혼과 출산의 여신인 헤라가 이 꽃을 결혼식 당시에 지니고 있었다고 해서 순수, 영원한 사랑, 결혼 등의 꽃말을 가진다. 또한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제우스와 결혼을 하게 된 헤라에게 축하의 의미로 오렌지 나무를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결혼식 날 제우스가 직접 헤라의 머리에 오렌지 꽃을 올려주었다는 설이 있어서인지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결혼식에서 하얀 웨딩드레스와 함께 오렌지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 등장했다.

이처럼 결혼하면 떠오르는 오렌지 꽃과 오렌지 나무로 반짝이는 도시 세비야까지 생각하면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이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의 문을 연 조키아노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어릴 적부터 일찍이 음악에 재능을 보여 18살에 첫 오페라를 초연한 후 그로부터 6년 뒤 현재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인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의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ville)》를 기초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총 2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부파(Opera buffa)다. 여기서 오페라 부파란 희곡 오페라의 한 양식으로 한자어로는 희가극(喜歌劇)이라 불리는데, 로시니 역시 본인의 작품처럼 유쾌한 성격을 가진 소유자로 알려졌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젊은 영주 알마비바 백작의 세레나데로 시작한다. 백작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연히 본 아리따운 여인 로지나에게 반해 그녀가 사는 세비야까지 따라오게 되는데 그녀 곁에는 로지나의 상속 재산을 노리는 음흉한 후견인 바르톨로 의사가 지키고 있다. 그로인해 백작이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작품의 유명한 아리아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를 부르며 이발사 피가로가 등장한다. 백작은 마을의 비밀과 스캔들을 알 정도로 사람들과 가까운 피가로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고 바르톨로에게서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렇게 다행히 로지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게 된 백작, 이때 로지나는 또 다른 유명 아리아 《방금 들린 그대 음성(Una voce poco fa)》을 부르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바르톨로는 당장 그녀와 결혼을 진행하기 위해 공증인을 부르지만 피가로의 도움으로 백작이 먼저 로지나와 결혼을 성사하게 된다. 뒤늦게 돌아온 바르톨로는 결국 체념하고 그들을 축하하며 모두의 합창으로 막이 내린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제대로 된 무대를 올리지 못했는데 로시니보다 먼저 이 희극으로 오페라를 만든 조반니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공연부터는 파이지엘로를 넘어서는 인기를 누리며 큰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로시니는 이 오페라를 단 3주 만에 작곡을 할 정도로 속필이었다고 하는데 반면에 게으른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당시 공연이 임박하도록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서곡(Overture)을 써놓지 못해 결국 자신이 예전에 써놓은 다른 오페라의 서곡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혜연 플루티스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 작품은 벨칸토 창법의 대표적인 오페라다. 벨칸토(Bel canto)란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쓰인 화려하고 기교적인 창법으로 로시니는 벨칸토 창법을 활용한 마지막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 속에 사라져 가던 벨칸토 창법을 전수받은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도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정의했다. 그녀의 음성으로 로시니의 아리아를 들으며 이 선선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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