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송문용 충남내포본부장

천안 태조산의 태조가 이성계일까, 왕건일까. 이 질문에 천안시민 모두가 고려 태조 왕건이라고 답하지 못한다. 시민 잘못은 아니다. 천안이란 이름을 짓고, 도시를 탄생시킨 왕건을 등한시한 향토사학계와 시가 책임질 일이다.

고려 말 유명한 학자관료 이곡이 천안을 들른 적이 있다. 그는 목은 이색의 부친이다. 천안군수가 회고정이란 정자를 복원하고 글을 부탁했다. 이곡은 천안이 후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고을임을 강조하며 이를 소홀히 생각한 주민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이 사는 곳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아느냐? 이곳은 왕업을 일으킨 땅으로 태조(왕건) 사당이 있는데 지금은 건물이 퇴락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서 근본에 보은할 줄 모르면 공경을 모르는 것이다."

그는 천안이 통일의 왕업을 일으킨 땅, 즉 흥왕지지(興王之地)라고 일컬었다. 맞는 말이다. 왕건은 930년 전주에 있는 후백제를 격퇴하기 위해 군사교두보로서 천안신도시를 만들고 "천하를 편안히 할 고을"이란 엄청난 이름 천안(天安)를 직접 지었다. 그리고 6년 후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지난달 천안문화재단이 '왕건 뮤지컬'가능성을 타진하는 포럼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뮤지컬 제작의 타당성은 공감했지만 신중한 준비를 당부했다. 예산 수십억 원을 쏟아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큰 예산을 쓰려면 시의회, 특히 시민 호응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천안과 태조 왕건의 연관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 시는 2016년 첫 '왕건과 천안' 학술대회를 연 이후, 연속적으로 관련 심포지엄을 열어왔다. 그러나 항상 학자들만의 잔치로 끝났다. 한때 시에서 왕건 동상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다수 시민이 아직 공감 않는 생뚱 맞는 발상"이란 지적이 있자 소리없이 사라졌다.

천안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시역사브랜드로 가져가려면 가장 시급한 건 시민 홍보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뭘까. 적은 예산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 지난달 포럼에 참석한 조한필 전 충남역사문화원장의 토론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태조산공원으로 가는 유량동길 2.5km의 도로 이름부터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 길을'왕건의 길'로 만들고, 쉼터 몇 곳을 조성해 왕건의 천안도독부 설치(930년 음력 8월 8일), 후삼국 통일 이야기를 담은 패널을 설치하자고 했다.

이어 시가 추석 1주일 전인 음력 8월 8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으면, 이를 기념하는'왕건 거리퍼레이드'를 유량동서 열자고 했다. 왕건에게 귀순한 견훤, 경순왕은 물론이고 태자, 천안부원부인, 박술희, 유금필 등 후삼국 통일시기 주요 인물이 유량동길을 걸어 태조산으로 향하는 웅장한 거리행진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태조 왕건의 천안역사콘텐츠화를 받아들일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야 한다. 이런 가운데 시가 태조산에 조성할 태조왕건기념공원도 그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송문용 충남내포본부장
송문용 충남내포본부장

이런 중대한 제반 사업을 장기적으로 조망하고 계획하려면 '태조왕건 콘텐츠팀'을 어딘가 만들어야 한다. 시가 아니면 천안문화재단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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