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김현식 제천제일고 수석교사

스스로 표현하시길 '어깨너머로 四書를 조금 배웠다'는 내 어머니 이 여사님께서는 경학(經學)에 조예가 매우 깊으신 결 고운 분이셨다. 나는 운 좋게 이 여사님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노산(老産)이라 모유는 보름 남짓 맛을 보는 것에 그쳤다고 내내 미안해하셨지만, 실은 그것 빼고는 당시 또래에 비해 의식주 대부분이 넉넉했고, 천하의 호랑이 아버지께도 막내만의 특권으로 서슴없이 호불호를 표현하고 오빠 언니들의 넘치는 사랑은 그저 덤으로 받으며 그야말로 '정서적 금수저'로 자랐다. 정녕 세상의 참 평화란 부모 형제의 슬하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더불어 사람으로 살면서 인정 없는 세월과 세파를 누군들 피할 수 있겠는가? 남들처럼 매번 생소한 우여곡절(迂餘曲折)을 수차 겪으며 치명적 內傷을 입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삶의 '매듭을 푸는 일'이란 오로지 홀로 정면승부를 걸어야 하는 일이라 두려움과 속수무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으나 나는 끝내 해법과 해결책을 찾아냈고 '살아남는 일'에 지치지 않았다.

어느덧 무조건적 우군 이 여사님도, 막내딸을 위해서라면 '북청 물장수'도 기꺼이 하겠다시던 아버님도 오래전 별세하셨다. 나는 천애고아(天涯孤兒)로 뒤로 물러앉아도 억울할 일 하나 없을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사에 핫한 '인싸'로 산다. 나에게 '낄낄빠빠' 중에 '빠빠'는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주책맞은 무한 용기와 활력 그리고 탄탄한 멘탈의 원천은 이 여사님의 자녀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남들보다 많은 우리 칠 남매를 양육하시며 간섭이나 말수를 몹시 아끼셨던 어머니였지만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만은 늘 중언부언 하셨다.

버려라(비우라). 그게 뭐라고.

당겨 걱정하지 말아라. 닥치면 반드시 해낸다.

네 판단(결정)이 옳다. 전처럼.

매번 뜻 모르고 들었던 어머니의 당부가 노자의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심오한 철학에 기인 했음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즉 버림(비움)은 채움의 시작이 되고, 실패는 성공의 계기가 될 것이므로, 자신의 판단과 역량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버리고 돌아서는 일에 주저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갓 스물세 살에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초임지로 나서는 막내딸 걱정에 동행하셨던 두 분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아이구 막내야!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데……."

라는 어머니 걱정에 아버지께서는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잖어."

라고 위로하셨다.

김현식 제천제일고 수석교사
김현식 제천제일고 수석교사

막내딸 김 선생은 어머니의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에 힘입어 38년째 야무진 교사로 교단을 지키고 있다. 나의 맘 여린 동료들에게도 '반자, 도지동'를 힘차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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