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권오중 시인·가수

바람이 분다. 삽상한 바람이 산들산들 분다. 참 고마운 바람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무더위 끝에 찾아온 손님이라 더욱 반갑다. 해가 갈수록 여름이 뜨거워지고 길어지고 있다. 지구가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이 눈물 나게 고맙고 반갑다. 이제 산들바람이 시름과 걱정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고 살포시 행복을 데려온다.

9월 낮에는 여름, 밤에는 가을. 이렇게 두 계절이 줄다리기하며 사이좋게 공존했다. 이때가 두 계절의 밀월(蜜月)기간이다. 그래서 과일에 단물이 담뿍 든다. 또한 뜸을 들이는 기간이다. 치이익 밥솥이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조용히 뜸이 뜬다. 이처럼 막바지 무더위가 세상을 뜸 들인다. 그래야 가을이 맛있다. 이 뜸 들이는 시간이 지나면 여름 내내 숨어있던 산들바람이 살금살금 우리 곁에 다가온다.

밀월(蜜月)기간이 또 있다. 3월이다. 이때는 겨울과 봄 두 계절이 줄다리기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밀월(蜜月)기간이다. 그래서 꽃을 피우고 꽃의 샘에 달콤한 꿀(蜜)을 저장한다. 그리곤 벌·나비를 유혹한다. 그러면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를 좇아 나그네 벌·나비가 찾아온다. 그런데 자꾸 꿀벌의 수가 줄어들어 걱정이 많다.

바람은 계절마다 이름이 있다. 봄에 부는 바람을 새로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새바람→샛바람'이라고 부른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푄현상을 일으키며 높은 곳에서 부는 새바람인 '높새바람'이다. 여름에는 남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게 마주 부는 바람인 '맞바람→마파람'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라고 속담에도 등장한다.

가을에는 서풍으로 바뀌는데 이를 '하늬바람'이라고 부른다. 하늬는 뱃사람들 용어로 서쪽이라는 뜻이다. 가을에 부는 바람을 줄여서 '갈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바람이 부는데 이것이

'뒤바람'이다. 한자어로 삭풍(朔風)이다. 북쪽 삭(朔)이다.

요즈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가 살갑게 다가온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이 가사에 바람이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바람은 '창밖에 앉은 바람'으로 공기 중에 부는 바람이다. 두 번째 바람은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로 무언가 바란다는 바람이다. 따라서 '바램'은 '바람'이 맞다. 요즈음 이 가곡을 부르는 성악가들이 '바람'으로 고쳐 부르고 있어 참 다행이다.

노사연이 부른 '바램'도 '바람'이 올바른 표현이다. 이렇게 힘이 센 노래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이 '바랩니다', '바램을 해봅니다'라고 무척 많이 사용한다. 이 또한 '바랍니다'라고 써야 올바르다. 특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노래는 태풍처럼 파괴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작사가, 시인, 문인들은 올바른 용어와 맞춤법을 써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먼저 솔선수범하고 올바르게 선도(先導)하는 데 힘써야 한다.

권나연 시인이 쓴 '봄 바람난 년들' 시를 보면,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이렇게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봄바람도 있다. 무는 바람이 들면 버린다. 이렇듯 좋은 바람은 괜찮지만 나쁜 바람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바람 맞다'라고 하면 '상대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허탕치고 돌아오다'라는 뜻이다. 약속 장소에 나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 마음에 부는 것이 쓸쓸한 바람이다. 또한 '바람을 맞다'는 '풍(風)을 맞다'라고도 말한다. 중풍(中風)이나 통풍(痛風) 그런 바람은 달갑지 않다. 모두 피하려 한다.

권오중 시인·가수
권오중 시인·가수

문득 하늬바람이 분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뛸까. 살갑고 찬란한 가을이다. 바람이 나에게 자꾸만 밖에 가자고 조른다. 가을이 푸짐하게 만찬을 준비하였다. 고슴도치 같은 가슴을 열고 알밤이 툭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재빨리 알밤을 물고 사라진다. 하늬바람에 머리를 흔드는 억새와 코스모스가 정겹다. 갈바람에 호수가 간지러워 반짝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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