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재림 진천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어린 시절 집중력 향상과 두뇌 계발을 위해 매일같이 동네 오락실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여느 날처럼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오락실에 들어와 "○○○이 주는 돈이다"라고 크게 소리치며 자루 속 동전을 바닥에 뿌리고 사라졌다. 모두가 허겁지겁 동전을 주웠고, 그날은 공짜 오락을 하게 된 '운수 좋은 날'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과거 선거에서는 금력이 필수적인 요소였다.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기에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면 출마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누군가가 선거에 출마해서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이 거덜 났다는 말들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어린 학생들이 주 이용자인 오락실에서 금품 살포가 벌어졌던 걸 떠올려보면 당시 매표행위가 얼마나 횡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치인은 당선되고 나서도 다음 선거를 위한 사전포석이 필요했다. MZ세대가 아니라면, 예전에 집집마다 정치인의 직명과 성명이 새겨진 시계나 거울 등의 물품이 하나쯤은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과다한 선거비용은 정치인의 각종 비리 연루 등 부정부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나타나는 선거의 불공정은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국민통합의 걸림돌이 된다. 결국 이전부터 제기되었던 반성과 개선의 목소리가 제도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직선거법은 기부행위를 상시 제한하는 등 매수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람들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마련하였다.

이는 선거문화에 실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선거 관련 금품수수는 누구에게나 인정의 표시가 아닌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선거에서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물이란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금권선거의 관행이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행태가 매우 은밀하게 변모하였을 뿐이다. 아직도 선거 때마다 후보자 또는 관계자가 기부행위 관련 규정을 위반하여 적발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처벌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금품이 동원되는 건, 그것이 아직도 표심을 얻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시장논리에 비추어 수요를 먼저 0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한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불법을 목도하고 침묵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신고․제보하는 비판적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행동에 비난이 아닌 박수와 칭찬이 뒤따르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최재림 진천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최재림 진천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내년도 4월 10일에는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다. 우리 위원회는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기부행위 제한 및 과태료·포상금제도를 적극 홍보할 것이다. 내 유년 시절 '운수 좋은 날'의 비극이 실생활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입후보 예정자와 유권자 모두 경각심을 가지길 바란다. 아울러 이후의 선거에서는 관련 홍보의 필요성이 사라질 만큼 깨끗한 선거문화가 생활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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