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얼마 전 일반정규방송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재미를 느끼며 보다가 슬슬 재미가 없어지자 순간적으로 방송을 빨리감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보는 프로그램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대세인 OTT 앱이나 동영상 시청을 인터넷으로 주로 하다보니, 보는 영상이 재미가 없어지면 빨리감아 보거나, 원하는 부분만을 보는 것이 익숙해진 습관에서 나온 작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지루함도 참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참을 인(忍)과 견딜 내(耐)가 만나 이루어진 인내(忍耐)라는 단어가 있다. 여기서 인(忍)은 마음 위에 칼이 놓여 있는 형상이다. 무엇을 참는다는 것은 마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을 잘라내어야 한다는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또한 내(耐)는 수염을 깎던 치욕적인 형벌을 나타내는 글자가 바뀌어 견디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인내라는 것이 이렇듯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단어 안에 이미 내포되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내하며 지내야 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것이 단순히 순간적인 참을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같은 때를 기다리며 오랜 인내의 시간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때론 지금 당장의 고통으로 인한 힘듦이,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또 때로는 억울함과 같은 감정이 마음으로부터 올라오기 때문에 인내하는 것은 쉬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내'의 모습이 사라진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비관하여 스스로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거나, 고통에 짓눌려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불특정 다수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묻지마 살인'과도 같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그럼 무엇이 우리가 인내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줄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이 어려운 상황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일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우리가 많이 쓰는 명언을 그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선수들이, 각자가 지닌 '희망'이 없었다면 기나긴 훈련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마치 이처럼 지금의 시간을 이겨내는 힘을 얻고자 우리는 꺼지지 않는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계획대로, 나의 바램대로 이루어지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삶 안에는 인내가 요구되는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장자크 루소의 말처럼 희망을 갖고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로운 모습이 필요하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매번 명절때만 되면 들려오는 가족·친지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발생하는 사건소식에서부터 삶의 참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의 분노에 갇혀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키는 사건들을 접하는 한국사회의 안타까운 현상 안에서 다시금 '인내'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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