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노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유난히 화창하던 어느 주말, 거리에 차들이 빽빽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바로 형형색색 물든 나뭇잎을 보기위한 행렬이다. 어느새 찰나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는 대개 계절의 변화를 온도의 감각으로 느낀다. 그러나 가을만큼은 시각으로 그 변화를 더 일찍 느끼는 듯하다. 늘 푸르던 초록색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가을의 시작이다. 모든 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물결칠 때가 바로 이 계절의 절정이다. 그러나 낙엽들은 이내 떨어진다.

그리 빨갛던 단풍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꺼지기 전의 촛불이 가장 밝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계절과 이별한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이 계절의 탄생화 금잔화는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것 마냥 이별의 슬픔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을 앞두고 꽃처럼 아름다운 한 여인을 마음에 품게 된다. 그녀는 바로 같은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소프라노 콘스탄차 드와드코프스카.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그녀를 본 후로 매일 밤 꿈에 그녀가 나온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쇼팽은 정작 자신의 마음은 그녀에게 전하지 못했다. 대신 그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피아노 협주곡 e단조의 2악장(Piano Concerto in E minor, Op.11)에 그 감정이 묻어나온다.

1810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쇼팽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려 7살에 폴로네즈(Polonaise in g minor B.1)를 작곡하는 등 귀족들에게 제 2의 모차르트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실력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폴란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천재가 탄생했다며 극찬을 했을 정도였다. 이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그는 졸업 후 여느 음악가와 같이 빈으로 떠날 계획을 가졌다. 그렇게 1830년 10월, 음악원을 졸업한 쇼팽은 조국을 떠나기 전 고별음악회를 열었는데 당시 콘스탄차도 성악가로 찬조 출연했으나 그녀는 끝내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이후 빈으로 떠난 그는 에튀드 3번, <Etude Op.10, No.3> 흔히 말하는 '이별의 곡'을 작곡했다. 쇼팽이 "이토록 감미로운 멜로디는 내 생애 처음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연습곡 3번은 그의 27개의 에튀드 중에서 느린 멜로디를 가진 몇 안 되는 곡이다.

에튀드(Etude)는 어떤 악기의 테크닉이나 표현방식을 갈고 닦을 목적으로 작곡된 연습곡인데 쇼팽의 피아노 에튀드는 단순히 연습곡의 의미를 넘어서 음악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낭만주의 시대의 중요한 피아노 테크닉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에튀드 3번, '이별의 곡'>은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콘스탄차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조국과의 이별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평가받는다.

1830년 11월 2일, 폴란드를 떠나 빈에 도착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에서의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되는데 바르샤바에서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항거하는 대규모 무장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수개월간 계속된 봉기 끝에 결국 러시아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해서 혁명에 실패하고 많은 폴란드인이 희생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쇼팽은 "신이시여, 당신은 러시아인입니까?"라는 일기를 쓰며 조국의 앞날과 가족들을 걱정하며 지내야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후 결핵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 그는 결국 살아서 조국의 땅을 밟지 못했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되었다.

정혜연 플루티스트
정혜연 플루티스트

19세의 젊은 청년이었던 쇼팽은 고향을떠날 때 이렇게 다시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생각했을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 중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모든 낙엽이 다 떨어지기 전에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보며 이별에 대해 고민하는 달이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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