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속협 전문가칼럼] 배명순 환경생태위원회 위원

우리나라 지속가능발전의 6번째 목표(SDG-6)가 '건강하고 안전한 물관리'다. 흔히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생명은 흙에서 나고, 그 생명을 키우는 것이 물이라고 한다. 어쨌든, 물은 생명과 뗄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물이 있는지를 판단한다고 한다. 흙과 물이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마시고 사용하는 물은 과연 안전하고 건강한가? 지구적으로 물 위기를 말하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도 물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어딜 가든지 수돗물이 나오고, 마실 물도 구할 수 있다. '돈을 물 쓰듯 한다'라는 속담이 당분간 유효할 것 같다. 이처럼 물을 아무 걱정이나 제약 없이 사용하는 나라도 드물다. 물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은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집과 사무실을 나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집 근처의 도랑, 냇물, 작은 하천은 거의 모두 접근하기 어렵다. 하천의 구조가 사람의 접근을 어렵게도 하지만, 수질도 안전하지 않다. 70-80년대 물고기 잡고 헤엄치던 하천은 더 이상 없다. 시내에서 멀리 국립공원의 계곡에나 가야 안심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바라만 보는 물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물과 함께 살아온 긴 세월을 생각할 때, 지금의 상황은 매우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지속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왜 그런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 하천과 호수에 대한 국가 정책은 더 발전했고 견고해졌다. 법과 정책도 매우 꼼꼼하고 중복적이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제도가 허술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안전하고 건강한 하천과 호수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 원인은 제도나 정책에 있기보다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와 정책은 꼼꼼하고 견고하지만, 현장에 적용되기에는 거리가 먼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하천과 호수에 인접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물에 영향을 주고받는 주민들은 제도와 정책을 잘 모른다. 무관심한 탓도 있겠고,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물관리는 국가(환경부) 주도의 중앙집권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상수원보호구역,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수변구역, 수질오염총량관리제 등 대부분의 물관리 제도와 정책은 지방정부나 지역 주민과 협의나 협력을 통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만들고 통보하면, 지방정부는 따라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은 배제되었다. 그러다 보니 제도와 정책에 대한 주민의 이해도와 참여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대청호는 주변에서 들어오는 오염원보다 상류에서 유입되는 것이 훨씬 많고, 체류시간이 200일 가까이 되어 녹조가 번창하는 것인데, 주변 지역의 개발 규제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래서 40년 넘게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미호천 유역은 산업단지와 가축분뇨가 주 오염의 원인인데, 실제 산업단지와 축사는 더 늘어났다. 제도와 현장이 따로 돌아가는 것인데, 가장 큰 원인이 현장을 모르는 국가(환경부)가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때문이다.

물(하천, 호수)과 사람이 분리돼서는 제대로 된 물관리가 불가능하다. 과거처럼 하천과 호수가 삶의 터전이 될 때, 수질오염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스스로 개선하려 노력하게 된다. 하천을 비롯한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지역 주민에게 경제적으로나 삶의 질적인 면에서 이득이 돼야 지속가능한 물관리가 가능하다. 즉, 중앙정부 주도의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마을 곳곳에서 주민이 참여하고 주체가 되는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리고 하천과 호수의 권리와 책임(주권)은 국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더 큰 부분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관리 민주주의. 지역 주민이 물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갖고 행사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물관리, 건강하고 안전한 물관리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법이 개정돼야 하는험난한 과정이 남아있긴 하다. 환경정책기본법, 4대강 수계법, 수도법, 댐건설관리법, 하천법 등에서의 계획들도 중앙정부(환경부장관)가 아니라 지역(주민)에서 수립한 계획이 우선되도록 관련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

배명순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환경생태위원회 위원·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배명순 충청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환경생태위원회 위원·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금의 제도에 불편함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점을 느끼지 못한다면 모르겠으나, 문제가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면, 민주적 물관리로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염두에 둬야 하지만, 그 전환의 시작은 가능한 빨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대전환 초기에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기다려주는 인내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시행착오의 전환기를 지혜롭게 잘 넘길 때, 우리는 다시 물과 친숙해지고,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정한 '워터 르네상스(Water Renaissance)'가 구현되는 물관리의 대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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