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용은 / 원불교충북교구 사무국장

우리들 옷장 안에는 입을 만한 옷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마 수벌 정도는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옷이 어떤 것인가 한번 골라 보면 가장 오래된 옷은 아마도 이 육신이 아닌가 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입고 살아온 내 육신은 내 영혼의 의복입니다. 태양을 정월 초하루에는 새해라고 하듯이 가장 오래된 내 영혼의 옷인 이 육신을 새 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합시다.

새몸으로 거듭 다시 태어나려면 이 의복의 주인인 내마음이 새마음으로 다시 태어 나면 내육신 뿐 아니라 내 가정 우리 사회 우리 국가 전 세상 모두 새로워지게 됩니다. 새마음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면 온통 세상이 새로워지고 극락과 천국이 바로 여기 지금 이곳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튀나옵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중생은 무명업장에 가리워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지만 불보살들은 태양 보다 밝은 지혜광명으로 세상을 활보하며 신바람 나게 살아가는 차이입니다.

중생의 무명업장이란 다름 아닌 경계따라 일어나는 착심을 말합니다. 착심의 첫째가 즐겨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끌려다니 다가 마침내 집착하게 되고 중독에 걸려서 꼼짝 달삭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태어 날 때 응애하고 우는 이유가 뭘가요 태중에서는 편안하다가 세상밖에 나오니 호흡을 들여 마시는 순간의 고통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한평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순간에는 마지막 호흡을 끝마치는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편하면 좋고 불편한 것은 싫어하면서 우리는 내가 좋아 하는것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쾌락의 노예로 변해버립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상을 떠날때는 이모든 쾌락이 엄청난 고통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쾌락의 노예에서 풀려나는 훈련을 부지런히 해야합니다. 이것이 수도생활이며 마음 공부입니다.

두번째의 착심은 내생각 내 의견 내주장에 대한 착심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친다는 것은 무서운 적공을 해야하는데 수억명 가운데 한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며 알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자기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진리처럼 알고주장하면서 세상을 온통 시끄럽게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의 주인이되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만이 발전과 통합 그리고 성장이라는 행복의 결실을 맺어줍니다.

세번째 착심은 바로 나자신에 대한 무서운 착심입니다. 우리 날씨가 더웁다 춥다 하지만 실은 날씨에 춥고 더운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체온보다 높은 온도를 덥다하고 낮은 온도는 춥다고 합니다. 표준은 내몸의 체온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욕심 내습관을 모든 판단의 표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할 때 내 습관과 틀리는 때는 불만과 원수를 만들어 세상을 온통 원망의 지옥으로 만들게 됩니다.

내 욕심의 불바다가 온통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기적 욕망 이에 대한 착심 하나만 놓아버리면 세상은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밝고 정성스런 아름다운 극락세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라는 색안경에 가려서 세상을 내 욕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만 보게 되면 혹 사업이 잘되면 일시적으로 천국 같기도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일시에 전쟁과 지옥으로 변해버립니다.

하루속히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올바로 바라봅시다.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의 집착을 여의면 자유를 찾게 되고 극락을 소유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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