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근 단양군수가 수해 당시 가장 의미있는 사진으로 꼽고 있는 책자 속 물탱크 모습.   /정봉길
김문근 단양군수가 수해 당시 가장 의미있는 사진으로 꼽고 있는 책자 속 물탱크 모습. /정봉길

[중부매일 정봉길 기자〕김문근 단양군수가 '시루섬, 그날'을 출간했다.

1972년 시루섬 수해의 기억과 흔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당시 생존자 등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한 이래 10년동안 발품을 팔아 이뤄낸 성과물이다.

이 책자는 579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남한강 대홍수가 있었던 1972년 8월 19일~다음날 오전까지의 시루섬 24시간을 시간순으로 기록했다.

사진과 삽화, 도표 등도 실려있다.

프롤로그에는 작가의 말과 박동준 시루섬기념사업회장, 이원종 전 충북도지사, 김영환 충청북도지사, 이동필 전 농림부장관, 조철호 동양일보회장, 엄태영 국회의원의 추천 글도 실었다.

본문은 '시루섬 마을 훑어보기', '시루섬 수해 한눈에 보기', '시루섬 그날 자세히 보기'를 부록으로 책자기록, 신문기사, 증언록을 담았다.

책자 내용을 따르면 1972년 수해 당시 시루섬에는 주민과 연수생 등 242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물탱크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201명, 나무 위 원두막 3개와 마을배(철선)에 41명이 분산돼 대피했다.

높이 6m, 지름 5m의 콘크리트 물탱크에 201명이 올라가 15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사람들이 (표지 디자인처럼) 팔을 걸어 인간 울타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극은 물살에 쓸려 나무가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제2원두막 기둥나무가 쓰러지면서 7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물탱크에서는 밀도를 이기지 못해 백일 아가가 압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50년 전의 시루섬 수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마을 사람이 떠나고 변변한 기록 하나 남기지 못한 시루섬은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속에 가라앉은 무인도가 됐다고 쓰여 있다.

김문근 단양군수가 까맣게 잊혀진 시루섬 마을의 아픔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것이다.

지난 2013년 단양군 부군수로 부임했던 그는 시루섬 수해를 극복한 무수한 진실의 조각들이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다는 게 안타까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시의 상황을 가감없이 기록, 정리해야 하겠다는 강한 소명의식에서다.

그 기억과 흔적을 찾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진 시루섬 생존자 22명을 직접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녹음, 타이핑을 수없이 반복하고, 당시 신문기사와 사진을 수집하면서 당시 마을 지도까지 그렸다며 힘들었던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김 군수는 "1972년 수해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에서는 항구적인 홍수방지 대책으로 충주댐 건설이 결정됐다. 이로 인해 전국 최초로 군청 소재지를 이전해 오늘의 단양이 있게 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양에 타이타닉 정신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시루섬 정신이 있다. 이 시루섬 정신을 후대에 물려줄 자랑스런 '단양의 정신'으로 이어가자"고 말했다

한편 출판기념회는 오는 19일 오후 2시에 단양읍 소노문 그랜드볼룸홀에서 열린다.

책자는 총 3천부를 발간했으면 1권당 3만원에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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