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경제칼럼니스트·경제학박사

'지역개발이란 지역이 더 나은 상태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발전의 과정을 뜻하는데, 지역개발의 주체와 접근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인구, 사회, 정치, 문화, 환경, 생태 관련 분야까지 확장된다. 지역개발은 국가와 지방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제도의 정책 개입 대상으로서 주민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충북대 지리교육과 이재열 교수가 번역·출간한 '지역개발론'의 내용 중 일부다. 지역개발 우선순위는 국가, 지역, 도시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데 한마디로 지역개발의 의미, 대상, 주제, 목적, 가치, 방법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하며 공간적으로 차별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많은 행위자가 지역개발이란 도전적 문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개발정책과 공간계획의 조응성 및 실천성 여부가 늘 주목받아 왔다. 단기간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수도권 집중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점차 심화하면서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쟁점으로 급부상한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에서 '수도권 일극중심 체제'에 대한 우려가 여실히 드러났다. 논란이 가열되자 집권 여당은 서울을 기폭제로 해서 전국의 '초광역 메가시티'를 구축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메가시티 서울'이라는 명분이 서울 집중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시각부터 비수도권 시도 간 초광역 경제공동체 연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수도권·비수도권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청사진이 먼저라는 목소리까지 각양각색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사람을 모으고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 갖는 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이를 '공간력(空間力)'이라 명명했다. 공간력은 도시·지역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도시·지역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 문화 인프라 구축과 함께 정주 여건 개선, 의료복지서비스 확충 등 공간력 제고를 위한 시책 마련에 분주하다. 지방소멸을 막을 인구 증대와 깊이 연관된 까닭이다.

여기서 공간력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지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디지털 공간과 이어지면서 신영토 개념으로 확장된다. 공간력은 공간 자체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력(引力), 가상의 공간과 연계되어 효율성을 높이는 '연계력', 메타버스와의 융합을 통해 그 지평을 넓히는 '확장력'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리 삶의 토대이자 터전인 실제 공간과 가상공간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트렌드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4'에는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액체라는 뜻의 리퀴드(Liquid)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탄(politan)을 합쳐 현대 도시·지역이 액체처럼 유연하고 서로 연결되며 다채롭게 변모하는 가변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단어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많은 데드크로스를 넘긴 현시점에서 인구 증가를 전제로 한 대규모 개발이나 양적 확대보다는 작은 실험을 통해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 사람들이 정주하는 '고정된 도시·지역'에서 여러 구성원이 어우러지는 '유연한 도시·지역'으로 공간 트렌드가 바뀌는 중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혹은 대도시와 중소도시라는 경직된 이분법을 넘어 각 지역 간 인구의 물 같은 흐름이 지속되는 패러다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노근호 경제칼럼니스트·경제학박사
노근호 경제칼럼니스트·경제학박사

물리적·디지털 공간을 망라한 공간력 강화가 도시·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 각 도시·지역이 개성 있는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너지가 흘러넘치는 리퀴드폴리탄이 되도록 지역 발전의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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