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때때로 내 인생이 밤과 같다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때 이야기하는 밤은 물리적으로 하루에 해가 진 저녁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내 인생이 밤과 같이 참 어둡다라고 할 때 이때의 밤은 지금 내 삶이 그만큼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밤을 생각해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엘리 위젤이다. 이 엘리 위젤은 유대인으로 불과 15살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서 모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가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그는 그 어린 나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서 1년간 사람을 인간 이하로 대우하는 온갖 고초를 다 겪고 극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고 나서 '밤(Night)'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 책을 보면 소년 시절 엘리 위젤이 경험한,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할 모든 부정적이고 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건들이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엘리 위젤은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나치 수용소의 잔혹한 경험들이 아주 어두운 밤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한 대목에서는 어린 엘리 위젤이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고통을 견디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이 마지막 밤일거야. 오늘이 마지막 밤일거야. 얼마나 더 이 밤이 계속되는 걸까.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 갑작스레 드리워진 지독한 밤의 시기를 견디고 또 견디는 그런 모습이 나온다.

이 엘리위젤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밤이라고 하는 시간을 생각할 때, 먼저 밤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밤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부정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밤은 죄와 상처, 외로움, 두려움, 불의와 악함과 폭력, 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밤은 고통의 시간이다. 우리 인생에 상처받고 외롭고 힘들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상황이 이 밤의 시간으로 비유되어 읽히고 해석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밤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밤이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깊은 나눔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밤이다. 또한 나를 잘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밤에 펼쳐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밤을 회복의 시간이라고 긍정한다.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이 낮 동안 온 에너지를 쏟아서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정비를 하듯이, 낮에 생긴 상처나 피로를 치유하는 회복의 시간이 밤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밤은 부정적으로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이토록 회복을 위해 유용한 시간이기에 군인들의 전투교범에서는 오히려 낮 동안의 전투에서 무너진 진지와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밤의 어둠을 이용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이 두 가지를 놓고 생각을 해보면, 밤은 고통의 시간이자 회복의 시간이다. 그러니까 밤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밤은 긍정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밤은 어두움의 시간이지만, 우리 스스로를 따뜻한 빛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시간이다. 밤은 고통의 시간이지만,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버티고 회복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다.어느 덧 해가 부쩍 짧아지고 밤의 시간이 길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당분간 밤은 점점 더 길어지고, 날이 갈수록 추위는 더 심해지고, 어두움은 더 깊게 드리워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 힘든 밤의 시간도, 우리가 함께 보내고 있는 세상 곳곳의 힘든 밤의 시간도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 길어지고 있다. 이 긴 밤의 날들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시간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막막하고 아픈 우리 삶의 상황들, 때마다 올라오는 어두운 생각과 감정들에 지지 않고, 밤마다 무너진 우리의 상황을 재정비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 이 세상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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