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11월 초 금요일 저녁 8시 경. 도쿄 시부야에 도착한 후에야 나의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겼음을 통보받았다. 숙소 호스트의 악의적인 의도에 숙소 예약플랫폼의 미숙한 일처리가 촉매제가 되어 졸지에 나는 도쿄의 한국인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대략 10년 만의 도쿄 방문은 그렇게 악몽으로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침 집을 나서면서부터 닳기 시작한 스마트폰 전원은 저녁이 되면서부터 저전력을 경고하고 있었다. 번화한 시부야 길거리 한 모퉁이 라멘집에 들어가서 충전을 하면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게 당혹속에서 먹은 짜디짠 일본식 라멘이 오랜만의 도쿄 방문 첫 끼니가 되었다.

작정하고 잠적한 숙소 호스트는 연락두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플랫폼 측과 연결이 되었지만 자신들도 호스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미안해하기만 했다. 몇 해 전 상하이에서 비자를 잃고 억류되었을 때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순간 카타오카 변호사님이 떠올랐다. 카타오카 변호사님은 한때 한국 로펌에서 일한 적도 있을 만큼 지한파 일본 변호사님으로 나와는 오래전 변호사 시보로 일본 로펌에 연수를 갔을 때 당시 그분으로부터 변호사 연수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이번 도쿄 여행을 계획하면서 카타오카 변호사님께는 미리 연락을 드리고 약속을 잡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도리였으나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도일 후 일정이 정해지면 연락드리려고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과 스마트폰 전력 수준은 나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그분께 연락했다. "난관에 빠졌습니다. 도와주십쇼"

"권상~ 지금 어딥니까?" 변호사님은 주말저녁 민폐 연락에 바로 응답을 하셨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몇 분 걸리지 않아 내 앞에 나타나셨다. 마침 시부야 근처에서 모임이 있어서 전화를 받으시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고 한다. 처음 사제지간으로 뵈었을 때는 청년 변호사였는데 지금은 머리가 살짝 희끗한 중년 변호사가 되어 있으셨다.

민망함과 감사함이 버무려진 두서없는 인사를 드렸다. 변호사님께서는 짧지 않은 시간 여기저기 연락을 하면서 경황없어 헤매던 나의 난관을 해결해 주셨다. 그러고는 긴자 근처 근사한 호텔까지 마련해 주시고, 택시까지 잡아주셨다.

가타오카 변호사님의 친절은 택시 기사에게 내가 가는 장소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도착하면 잘 도착하였다고 알려달라고 할 만큼의 디테일이 있었다. 그 세심한 배려는 '불안속에 나를 놓아두지 않겠다'는 든든한 선언으로 느껴졌다. 업계 스승인자 선배 변호사로서 전수해주는 비즈니스 에티켓 같았다.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카타오카 변호사님이 미리 호텔에 전화를 해주셔서 체크인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늑한 침실 외에 일본식 다다미방이 있었고, 객실에 독립적인 노천 온천탕이 딸려 있었다. 온천수에 몸을 녹이면서 카타오카 변호사께 전화를 드렸다. 변호사님께서는 그제서야 안심하셨다. 테라스에 앉아 긴자의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캔맥주를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오늘 있었던 해프닝이 해피엔딩으로 마감되었음에 감사했다.

이튿날 오전까지 숙소문제를 예약플랫폼과 다퉜다. 플랫폼 측에서 결코 만족 되지 않는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오랜만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들이 제시한 조건에 동의했다. 다투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그 시간에 여행하며 얻을 이득이 더 크다는 계산이었다. 비록 출혈이 큰 협상이었지만 결말을 짓고 나니 도쿄가 눈에 들어왔다.

10여년 전 변호사 연수를 받기 위해 갔을 때 처음 경험한 도쿄는 지금 더욱 크게 성장해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도쿄가 뉴욕을 제치고 도시의 부(富) 규모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경제가 수십년 정체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 수십년, 어쩌면 에도시대 때부터 쌓여진 부는 가히 세계 1위의 도시를 형성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여행 내내 11월 이상고온이 지속되어 춥지도 덥지도 않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도쿄 이곳저곳을 산책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미세하게 다른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도시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도쿄는 10여년 전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번화해진 것 같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가득하고 그 중 반은 여행객인 것 같은 느낌이다. 식사 때가 되면 음식점이 많은 거리의 웬만한 음식점은 대기가 엄청나다. 유명한 음식점은 한두 시간 웨이팅이 기본이다. 처음 일본에서 변호사 시보를 하면서 한가로이 식사를 했던 음식점은 지금은 유명 음식점이 되어 있어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그 맛을 추억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도시의 특정 지역 역시 개발되어 지역끼리 연결된 듯하다. 10여년 전 자주 걸었던 거리에는 새로 큰 빌딩들이 서있고, 한적했던 공원은 근처 레지던스가 발달하면서 더욱 잘 조성되어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새로 조성된 길을 걷다보면 전에는 지하철로 이동했던 낯익은 거리로 연결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또 걷다보니 역시 전에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던 익숙한 거리가 또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여행을 걷게 되었다.

어쩌다 급히 지하철을 타기위해 매표소 앞에서 허둥대고 있으니 퇴근하는 역무원이 한참 지켜보다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친절을 베푼다. 가끔은 내가 한국인인줄 알고 친근하게 한국어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렇게 시민들의 호의 덕에 여행 첫날 겪었던 악몽같았던 사건을 잊을 수 있었다. 마음이 풀어지니 음식도 입에 맞아가고 걷는 거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풋내기 시절 배우기 위해 도쿄에 왔을 때와 달라진 중년의 나 역시 도시가 변한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도쿄의 한국인은 4일간 십만보에 가까운 발자국을 도쿄에 남겼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누구는 나에게 '왜 갔던 여행지를 또가냐'고 하지만, 세월이 가져온 도시의 변화, 비슷하면서 다른 미묘함을 느끼며 그속에서 나의 변화를 느끼고자 한 나의 여행 목적에 적절한 선택지였다. 무엇보다도 여행중 혼란 속에서 카타오카 변호사님같은 고마운 존재를 재확인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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