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지훈 청주시 인사담당관 주무관

위계질서가 잡혀 있는 조직에서는 사용하는 말 또한 계층이 나뉘어져 있다.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상호존중의 의미로 존댓말을 사용한다. 상급자도 쉽게 "~야"라고 부르지 않고 "~ 주무관"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관계가 익숙해지면 이런 호칭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부를 때는 "~야", "~씨"로 바뀌고 동일한 계층 사이에서는 친밀도에 따라 '형, 누나, 오빠, 언니' 등으로 또는 이전과 동일하게 서로 상호존칭을 하는 사이로 남기도 한다.

경우가 어떻든 호칭은 관계를 계층화 한다.

'~씨'는 존칭 같지만 보통 상급자나 동일직위라도 나이가 많은 직원이 어린 직원을 칭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 존대의 의미로 보기 어렵다. 또한 친밀감을 높이고 서로 편하게 지내기 위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반말은 나이 차이로 '형, 누나'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관계라면 친밀해 보이지만 엄연히 위, 아래가 정해져 있다고 본다.

존댓말을 사용할 때 기대하는 것은 내가 상대를 존중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존중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댓말은 단순히 한쪽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동시에 한쪽을 낮추는 차별적 어법이다. 정말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해서가 아닌 상대와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도 사용되고 친근감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고 경직된 분위기를 형성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존댓말로 인해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이다. 1997년 대항항공 801편 항공기가 추락해서 탑승객 228명이 사망했는데, 비행기 조종실 내 기장의 강압적인 분위기 형성으로 부기장이 기장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축구선수들 간에 반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한 히딩크 감독의 반말지시 실험은 위 사례와는 반대로 수평적 의사소통이 어떻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혁신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이성민 철학자의 <말 놓을 용기>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이름호칭 + 반말'을 조합한 '평어'를 개발했다.

평어는 단순한 반말이 아니다. 이름 + 반말뿐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담고 있어야한다. 부를 때 "~야, ~아"가 들어가지 않는다.

호칭을 이름만 사용하지만'야자타임'과는 구분된다. 우리나라같이 존비어체계를 사용하는 일본에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야자타임이 끝난 후 어색한 분위기와 뒤끝만 남아 단점이 더 크다.

평어가 가지는 방향성은 나이 또는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상호 반말을 통해 수평적 관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평어 사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영어식 호칭 사용을 통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드려는 시도가 민간회사에서는 종종 이루어지듯이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지훈 청주시 인사담당관 주무관
이지훈 청주시 인사담당관 주무관

경직된 조직문화의 대표인 공무원 조직에서 평어의 사용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평적 의사소통의 의미를 부정할 수 없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나중에 우리 조직이 좀 더 수평적으로 진일보 한다면, 이렇게 한번 이야기 해보고 싶다.

"범석. 계획서 검토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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