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그리스도교 문화를 지닌 유럽에서는 성탄을 한달여 앞둔 시기부터 대림(待臨)시기를 보낸다. 대림은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림시기의 어원인 라틴어를 보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라틴어로 대림은 '도착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Adventus'이다. 원래 이 단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가 부둣가에 도착하여 닻을 내리고 정박을 하는 상황에서 사용되던 단어라고 한다. 바다 위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긴장감에 지쳐 있던 선원들이 육지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것이다.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육지에 발을 디디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은 선원들에게 참으로 소중한 시기일 것이다. 마치 선원들처럼,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우리들이 삶의 본향(本鄕)을 다시금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소중한 가르침 안에서 삶의 휴식과 희망을 찾아보는 시간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가 Adventus라는 단어 안에 담겨져 있다.

매년 이맘때면 '언제 한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갔지?'라고 말하는거 같다. 바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비춰지는지 참으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참으로 많다. 바쁨 속에 갇혀 무엇을 위한 바쁨인지 그 이유조차 몰라하기도 한다. 어른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이미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경쟁사회에 자의든 타의든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아이들 또한 거친 풍랑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선원들의 모습과도 같다. 분명 삶은 더욱더 편리해졌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들의 삶이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물질적 풍요는 이루어졌지만, 삶은 더욱더 각박해진 것은 아닌가? 낮아지지 않는 자살률과 높아지지 않는 출산률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인거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미래를 희망하기보다는 오늘을 살아내기에 힘겨워하는 이웃들이 날로 늘어나는거 같기도 하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다시금 우리들의 본향(本鄕)을 생각해 본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든 아니며 악하든 간에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거부할 수 없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너'라는 존재도 생각해야 한다. '너'와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경쟁만을 생각할 수 없다. 나의 편리만을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충분히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동체성을 위한 선천적 가능성을 개인 이기주의적 논리로 짓누르고 말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12월이 되면 유럽의 광장에는 성탄시장이 열린다. 마을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성탄 장식을 위한 물건들과 겨울철 먹거리를 판매하는 성탄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성탄시장 안에서 따뜻한 뱅쇼나 굴뤼바인으로 불리는 겨울철 별미인 계피향이 풍부한 따뜻한 와인을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한해를 마무리지고 서로에게 성탄선물을 건네는 유럽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순간만큼은 경쟁이나 각박함을 찾아보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성탄을 앞둔 대림시기를 즐기는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적이 종종 있었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들도 이런 여유를 즐겼으면 한다. 상업적 마케팅에 지친 성탄절이 아니라, 우리들의 본향(本鄕)을 생각하며, 나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녀봤으면 한다. 이런 여유가 우리들에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소중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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