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세이] 김병연 전 영동교육장

화청지 입구 
화청지 입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수주 만에 관객 800만을 돌파하는 등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 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본 영화에 대한 평가도 분분하다. 10·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과 12월12일 군사반란은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단초가 되는 한국현대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변곡점(變曲點)'이란 수학공식에서는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로서, '역사적 대변혁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지칭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12·12' 사건이 있었다. 중국의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12·12 서안사건'의 현장인 화청지(華淸池)를 찾은 감회가 생생하다.

항주(杭州)에서 서안까지 3등침대열차를 타고 24시간이나 걸린다고 해서 무척 지루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천만에 말씀'이었다. 여행의 진미는 역시 기차여행이었다. 열차 칸마다 어김없이 뜨거운 물이 공급되어 라면 끓여 먹기가 안성맞춤이고, 2층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열차를 타면 어쩐지 잠도 잘 오고 소화도 잘된다. 서툰 중국어로 낯선 중국인들과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서안 역(驛). 주(周), 진(秦) 한(漢), 당(唐) 고대 중국의 중심지였던 서안에 도착하니 이태백의 자야오가에서, 전쟁에 나간 남편이 그리워 다듬이만 실컷 두드리는 아낙네의 애절함이 들리는 듯하였다.

화청지(華淸池)는 지하철을 타고 손쉽게 갈 수 있었다. 입구 광장에는 현종과 양귀비가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의 동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내판에는 화청궁(宮)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규모면에서 '궁(宮)'이라고 부르는 게 합당한 것 같았다. 부용호와 구룡호 등 큰 호수가 두 곳이나 있으며, 장생전 등 대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궁(宮)'으로서 손색이 업었다. 양귀비와 현종이 목욕했다는 해당탕과 연화탕, 태자들이 목욕했다는 태자탕에서 43도나 되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고 있자니! 관광객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있기에 문패(門牌)를 읽어보니 '오간청(五間廳)'이었다. 이곳이 바로 '화청지12·12' 서안사건 현장이었다.

'서안사건'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방사령관이 전쟁을 독려차 온 대통령을 감금한 사건이다. 즉 1936년 12월2일 장개석총통과 장학량사령관은 낙양에서 만나 공산당 토벌에 관한 협의했는데, 장학량이 서안을 방문할 것을 간청하자, 참모들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만류에도 불구하고, 12·7일 서안을 방문하여 화청지내에 '오간청(五間廳)'에 투숙하였다. 12·12일 오전 3시께 장학량의 지시를 받은 군관이 정예병력 120명을 이끌고 화청지를 습격하여 호위병 대부분을 사살하고 장개석을 체포하기에 나선다. 새벽 4시 반에 막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체조를 하고 있던 장개석은 난데없는 총소리에, 옷을 갈아입긴 커녕 틀니조차 챙기지 못하고 3m 높이의 담장 넘다가 다리를 다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산으로 피신했으나, 오전 9시 경 반란군에 의하여 사로잡히고 말았다.

장개석은 장학량에게 "너는 도대체 나의 부하인가 적인가? 부하라면 나를 돌려보내고, 적이라면 나를 죽여라! 둘 중의 하나다"라며 국공합작(國共合作)을 단호히 거절했으나. 12·22에 남경에 있던 부인 송미령(宋美齡)이 도착해 장개석을 설득함으로써, 공산당대표와 2차 국공합작(국민당정부와 공산당이 협력)이 성사되자 그는 12월24일 저녁 석방됐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공산당은 풍전등화(風前燈火)에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함으로써 국민당을 몰아내고 오늘날 중국공산화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 된다. 이것이 서안사건의 전말이다.

화청지는 역대 왕조들의 운명을 지켜보았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3천년 전 주나라 유왕(幽王)은 이곳에서 애첩 포사와 함께 향락을 즐김으로써 국운이 기울었으며, 1500년 전 당(唐) 현종(顯宗)도 60세까지는 성군(聖君)으로 칭송을 받았으나, 며느리였던 양귀비와 환락(歡樂)을 일삼다가 안록산의 난을 초래하는 등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으며, 그리고 1936년 12·12 서안사건! 역사는 이렇게 중첩되고 되풀이 되는 것 아닐까?!

김병연 전 영동교육장
김병연 전 영동교육장

역사란 무엇인가! 단재 신채호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고, 에드워드 카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란 살아있는 현재로서 미래를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의 '12.12'와 중국의 '12.12' 역시 살아있는 현재로서 미래를 향하는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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