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배현영 중앙탑고등학교 수석교사

교과교실의 복도 쪽 긴 창가에는 선반형 책장이 있다. 흰색 철재 프레임과 받침으로 된 깔끔한 수납장이다. 복도에서 창 너머에는 선반에 놓인 학생활동 결과물들과 교과 수업 관련 도서들이 보인다.

종종 복도를 산책하는 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린다. 출입구를 열어 두었다. 들어가도 되나요? 물론이지. 몇몇 학생들은 안으로 들어와 관심 있는 책이나 작품 앞에서 머뭇거린다. 책을 펼쳐 보아도 돼요? 응, 그러렴. 본 후에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으렴. 며칠이 흐르는 동안 오던 학생들이 또 온다. 수업 시간에 한복 만들기도 하나요? 응. 한 학기가 걸리는 일이라서 요즈음에는 디자인 활동과 간단한 소품을 만들지. 한복 만들기를 배울 수는 없나요? 이렇게 해서 여름방학 중 인형 한복 한 벌 패션 완성 방과 후 수업을 개설했다. 지원 학생이 없어 폐강 걱정을 했는데 4명이 수강 신청을 했고 적은 인원이지만 개설이 허락됐다.

실매듭부터 배워야 해서 네모난 핀쿠션을 먼저 만들었다. 바느질 실력이 다들 초보여서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와~ 굉장한걸! 이 어려운 걸 도전하다니! 해 낼 수 있겠니? 차분하고 인내심 있는 학생들이어서 지각생 없이 수업을 해냈다. 디즈니 캐릭터 인형의 치수를 재고 만들어 둔 옷본을 토대로 마름질하고 바느질을 했다. 방과 후 수업 기간이 짧았다. 결국 개학 후에 점심시간 짬짬이 보충해 3명이 완성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며 수업 개설을 주도한 남규는 저고리에 속고름까지 만들어 달았다. 완성된 한복은 디즈니 인형에 입히고 겨울 방학 때 가져가기로 하고 학생 이름표를 달아 복도에서 보이도록 책장에 전시했다.

똑똑. 누군가 했더니 옷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우고 싶다며 학기 중 야간 방과 후 수업 개설을 요청한다. 서둘러 수업 개설을 신청하고 인형 옷 바디에서 입체적 본을 만드는 교재를 구입했다. 자투리천을 이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인형 옷 만들기를 3명의 학생들과 진행했다. 각자 탄력붕대를 감아 만든 인형 바디에 라인 테이프로 기준선을 잡고 키친타올로 옷본을 만들고 디자인도 하고 재료도 준비해서 고유의 인형 옷을 한 땀 한 땀 완성해 내었다.

배현영 중앙탑고 수석교사
배현영 중앙탑고 수석교사

와~ 굉장한걸! 이 어려운 걸 완성해 내다니! 배우고 이해하고 익히고 해 낼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몸이 익혀야 하는 배움에서는 더 그렇다. 배움을 찾아오는 학생이 있다니 복을 많이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2019년이었나? 인형 옷 방과 후 수업 후 학교 축제 기간에 대형 목욕 타올과 여러 소재로 놀랍고도 멋진 패션을 구현했던 세친구 학생들도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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