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얼마 전 가까운 교도소 교정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대화가 오가던 중에 내가 '그래도 요즘에는 이전보다 수용자가 좀 줄어들었지요?' 라고 질문을 던졌다. 예전보다 세상이 많이 발전되었으니까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교도소에 수용된 수용자들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던져본 질문이었다. 그런데 교정직원 분들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더 수용자들이 늘어났고, 실제로 수용할 시설이 부족할 정도로 더 폭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분이 왜 그러한가 자신이 추측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해주었다. 요즘에는 이전과 다르게 정서적으로 문제 있는 수용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게 예전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도소에 있어도 단순 교화가 안 되는 상황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형을 살고 나가도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또 다시 수감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 본인이 안고 있는 마음의 문제를 극복 못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깨에 이런 마음의 문제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외롭다는 사람, 불안하다는 사람, 자꾸 화가 난다는 사람, 우울하다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힘들다는 사람,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상처 받고 아파하고,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어려움을 다들 하나씩 어깨에 짊어지고 오늘을 살아간다.

교정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소프트 쿠션이라는 개념이 생각났다. 소프트 쿠션은 <아버지 이펙트>라는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아버지가 자녀의 정서적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얘기하면서 등장하는 용어다. 어린 자녀의 정서적인 건강함에 있어서 소프트 쿠션 같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있고, 하드 쿠션 같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 스트레스와 성장의 통증을 겪는다. 이 때 똑같은 통증과 스트레스를 받아도 충격을 잘 완충시켜주는 정서적인 부드러운 소프트 쿠션에 떨어져서 금세 회복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충격을 잘 완충시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충격을 더 크게 만드는 정서적인 딱딱한 콘크리트 하드 쿠션에 떨어져 문제가 있을 때마다 큰 내면의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다. 이 정서적인 내면을 만드는 결정적인 쿠션의 차이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해줬는가, 어떤 정서적 쿠션이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참 힘들었던 시절 이와 같은 소프트 쿠션을 경험한 사람으로 가까운 일본의 빈민·노동운동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있다. 도요히코 목사는 빈민들이 배를 굶다가 변비에 걸리면 딱딱하게 굳은 변을 자기 입으로 녹여서 빼줄 정도로 평생 가난한 빈민들과 함께 살면서 정성껏 섬겼던 분이다.

도요히코 목사에게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신학교 재학 중에 폐결핵에 걸리게 된 것이다. 당시에 폐결핵은 치료되기 힘든 무서운 불치의 전염병이었다. 그래서 청년 도요히코는 모든 관계가 다 끊기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 학교도, 교회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고통 속에 있는 도요히코를 가까이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상처로 깊은 불신에 빠지고 자살을 결심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런데 자살 직전에 5년 동안 단 한명의 신자도 없는 천막교회를 섬기고 있는 나가노 목사의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게 된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청년 도요히코는 나가노 목사의 초청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그때 자기도 모르게 통증이 올라와서 그만 식탁 위에 핏덩이를 토하고 만다. 그런데 그걸 본 나가노 목사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 행주를 가지고 와서 자기 손으로 청년이 각혈한 핏덩이를 치워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청년 도요히코를 자기 가족처럼 여기며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참 힘들었던 시절, 몸과 마음이 아팠던 시절, 나가노 목사의 소프트 쿠션으로 인해 청년 도요히코는 회복을 경험하고 평생 빈민을 섬기는 목사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안세훈 상당교회 부목사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시리고 아픈 마음의 문제를 다들 하나 둘씩 지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받아주고 안아줄 소프트 쿠션이 그립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때, 무엇보다 따뜻한 소프트 쿠션으로 서로를 안아주는 일들이 가득한 우리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키워드

#종교칼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