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세균 먹고, 물도 먹고 냄새도 먹는다는 동물이름이 들어간 제품이 TV광고에 나와서 어머니들의 청소걱정 빨래걱정을 덜어낸 것이 족히 30년은 넘은 일인 듯 하다. 1990년대 후반, 난방으로 건조해진 실내에 가습기 사용이 늘어난 이후에는 가습기 살균제품이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 2천년 이후부터는 사무실이나 집안 공공장소에서도 가습기가 널리 사용되다보니 위생관리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품이 다양하게 판매되었다. 가습기 물을 교체할 때 물에 넣어주면 인체에는 무해하며, 세균은 없애준다는 그 살균제가 가습용 물에 섞여 공기중으로 분무되도록 만들어져 허가를 받고 판매 된 것이다.

살균제가 인체에 해가 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까, 대체 세정제와 살균제의 차이도 모르고 정부는 허가를 해준 것일까? 살균제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하며 판매해온 것을 정부가 방관하다 지금까지 신고된 사망자만 1800여명에 이르고 확인되지 않은 사례 포함해 관련 사망자가 1만 4천 명에 달하는 걸로 추정된다. 가습기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 등 전직 대표와 임직원 13명이 지난 11일 항소심에서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1심 무죄가 선고된지 3년만의 일이다.

비누나 세제, 세척제 등 공산품의 품질과 광고는 산업부 기술표준원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당초 가습기 살균제는 '세척제'로 기술표준원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세척제 대신 살균제로 팔렸다. 우리가 오인한 것이 아니라 물에넣어 사용하고,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깨끗한 가습기를 사용하라고 광고 했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뿌리는 모기약도 흡입하지 않도록 권하는데, 밤낮으로 세척제라 허가된 살균제를 가습기 물에 섞어 분무 하는 것을 제재하기는커녕 KC 인증마크까지 붙여 주었다니 말이다.

앞서 작년 8월 중소기업 등의 부담 경감을 이유로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법안은 기업들이 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할 때 환경부에 등록해야 하는 신규 화학물질의 연간 취급량 기준 상향, 등록기준 완화, 유독물질을 위험도에 따라 세분해 규제를 차등화, 인체 만성유해물질만 취급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정기검사 의무 면제, 현재 허가제로 운영중인 유해화학물질 영업을 취급량에 따라 신고로 갈음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은 그 시작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인한 화학물질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있었다. 법 제정 당시 신규 화학물질은 취급량에 관계없이 모두 등록하도록 제정되었지만 등록하기 위해서는 인체와 환경등에 대한 유해성 시험자료를 준비해야하는데 이것이 업체에 부담이 된다는 업계의 주장에 따라 2018년 연간 취급량 100kg 이상으로 한차례 완화된 바 있다. 그동안 업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화답한 것은 대통령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회의에서 나온 "투자를 막는 킬러규제를 빠른속도로 없애라"는 주문에서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 지목된데 따른 결과이다. 이 법으로 연간 취급량 기준은 100kg에서 유럽연합 수준인 1t으로 한번 더 완화되었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등록기준이 되는 물질의 양은 같지만 등록 요구 자료가 다른 것이 함정이다. 이는 외국의 화학업체들이 개발한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자료 준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나라로 먼저 시험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살생물제' 즉 생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에 노출되면 치명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사망한 사람은 피해구제 신청자의 27%에 달했다. 목숨은 건졌다 하더라도 평생 폐섬유화 등 질환으로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유럽연합이나 미국은 30~40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이러한 살생물제품을 관리하고 있다. 생물에게 유해할 수 있는 화학 성분이 제품에 들어 있거나 공정에서 사용됐을 경우 쥐 독성 실험 등을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인체에 안전하다는 증명이 있어야만 시중에 판매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옥시 레킷벤키저사도 유럽연합 안에서는 이 규정을 엄격히 지켰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제정 당시에 유해성 정보가 없는 물질의 유통을 막을 방법이 강구되지 못했다는 비판과 유럽연합처럼 앞으로는 제품 생산단계에서 생산자들이 유해성 신고를 의무화 하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옥시 본사와 같은 유럽이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자국의 강력한 규제를 벗어나 한국에서 활개친 이유가 이러한 규제책이 마련되지 못한 것 때문이라 지적되어 왔다.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조성 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기업의 성장이 국가의 성장이라서 기업에 이익이 되는 행정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말씀은 입법 취지를 잊은 적극행정으로 읽힌다. 가습기 살균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생명을 빼앗고 남은 사람들의 삶도 황폐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또다시 어떤 화학물질이 내 몸을 위협하고 있을지 모를 불안감으로 화학 포비아가 되어 강박증에 사로잡힐 운명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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