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이진 서전고 수석교사

몇 해 전, 책 '아무튼, 비건'을 읽고 '채식'을 결심했다. 실천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제품은 피하기 어려우니 적어도 '소, 닭, 돼지'는 먹지 말자고 여러 차례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것 역시 번번이 실패했다. 나의 식습관은 견고했고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 육고기를 안 먹기는 어려웠으며 끼니마다 먹을만한 채식 요리를 만들어내기에 내 요리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계를 인지한 후 '채식 지향'이라는 다소 유연한 목표를 정했다. 유연하다 못해 때로는 내 다짐이 무색하여 부끄러운데도 이 화두를 놓지 못하는 까닭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동물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이 방향이 옳다는 믿음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육류소비를 줄여보겠다는 소박한 의지이자 소망이라고 할까.

그러던 지난 가을, 친구와 함께 '계절의 식탁'을 방문했다. '계절의 식탁'은 책 '나의 프랑스식 비건 생활'의 저자 하지희 셰프가 충북 괴산 '뭐하농하우스'에서 예약을 받아 차리는 식탁의 이름이다. 요리가 좋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던 이 요리사는 프랑스 요리에 너무나 많은 고기와 버터가 쓰임을 알고 방황하다 프랑스 채식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절의 식탁'은 그녀가 괴산의 농산물로 만드는 프랑스 채식 코스 요리인 것이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하지희 셰프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단 걸 알게 된 날, 친구와 나는 조금 흥분했다. 책으로 먼저 만난 그녀는 엄격한 비건 생활을 실천하고 있음에도 비장함 같은 건 없어 보여 아주 멋졌기 때문이다. (나 같은 하수들이나 비장한 법!) 어깨에 힘 뺀 고요하고 따뜻한 글에 한 번 반하고, 직접 만났을 땐 겸손함과 수줍음에 또 한 번 반했다. 이날의 메뉴는 프렌치어니언 스프, 괴산 잡곡 리조또, 홈메이드 티라미수 케이크. 우유 한 방울 안 들어간 리조또와 티라미수는 처음이라 신기했고, 맛도 아주 좋았다. 셰프의 설명을 곁들인 한 끼의 채식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녀의 요리 레시피 '잘 먹고 싶어서, 요리 편지'를 샀다. 하나씩 도전하며 나의 채식 요리 목록을 늘려가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세웠다.

'하루 두 끼는 채식한다'

'일주일에 4일 이상 채식한다.'

'내 돈으로는 육류를 구입하지 않는다.'

'내가 주관하는 모임 장소는 고깃집으로 정하지 않는다.' 등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항목들을 다시 점검해본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한 명의 비건보다 불완전한 여러 명의 비건이 더 필요하기에 나는 불완전하더라도 비거니즘를 지향하며 살아보려 한다.

이진 서전고 수석교사
이진 서전고 수석교사

그러니까 이 글은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신념을 지키며 사는 삶은 아름다우니까. 그녀처럼.

자, 이번 주말에는 '가지 무사카'에 도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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