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의 경험이다. 독일 남서부의 환경도시이자 교육도시로 알려진 프라이부르그(Freiburg im Breisgau)는 사회복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지역이다. 왜냐하면 독일 사회복지의 주축이 되는 6개의 민간사회복지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독일 카리타스(Deutscher Caritasverband)가 시작된 곳이며, 현재도 독일 카리타스의 중앙본부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적으로 의미가 있다 보니, 한국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시설견학을 포함한 해외연수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종종 있었고, 자연스레 연수팀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프라이부르그 곳곳을 다니면서 평소 이곳에서 지내는 필자가 느끼지 못하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휠체어에 의지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프라이부르그 시내를 다니시는 장애인분들의 모습이 한국에서 온 이들에게는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귀국을 한 이후 그리고 한국에서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분야에서 소임을 하다보니, 당시 한국에서 온 연수팀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하였는지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휠체어를 타시는 지체장애인분께서 누군가의 도움이나 장애인전용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시내를 나온다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피콜을 통해 리프트 택시를 예약해야 되고, 활동지원인이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동행해주지 않으면, 장애인에 대한 현실사회의 높은 벽을 더욱더 실감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논하고, 저상버스 확대의 효율성을 따지는 우리의 현실과 독일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인다 여겨졌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굳이 장애인전용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 해도, 지체 장애인이 시내를 나오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버스나 전철마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이동식 경사로가 비치되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탑승을 원하면 당연히 버스기사나 전철의 기관사가 내려 장애인의 탑승을 위해 이동식 경사로를 펼쳐준다. 물론 버스의 운행은 지연된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거나 장애인에게 따가운 시선을 건네는 승객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지체 장애인을 가진 이들 또한 사회구성원이고 이들도 동등한 이동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승객들의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전용택시를 중심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효율'을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이다. 하지만 인권에 있어 효율은 어울리지 않는다. 공리주의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동선은 사회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지닌 존엄성을 최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말을 바꿔 사회구성원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약자를 기준을 삼아 사회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장애인분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지역사회의 어디든지 다닐 수 있다면, 그 사회 구성원의 이동권은 모두에게 보장된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신호등에 음성지원체계를 구축한다면, 일시적 시각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불편없이 길을 건널 수 있을 것이고, 복잡한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포기하는 노인들이나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보장된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김성우 충북재활원장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서는 그래서 상대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다수(多數)의 사회 구성원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선을 지니는 것이 효율이 아니라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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