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재의 클래식산책]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

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한장면.
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한장면.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의 희곡'리어 왕'에 나오는 유명한 탄식이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직설적인 은유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어느 프랑스 미식가의 말처럼 무엇을 먹고, 입고, 읽고, 듣고 있는 것인지를 안다면, 자신이나 타인의 성향, 나아가 미래까지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이나 남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전 대기권의 전기가 피뢰침 꼭대기로 빨려 들어가듯이 정수리로 들어와 가슴이 파열하고 영혼이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임영웅의 트로트, 김광석의 포크송, 아바(ABBA)의 팝송,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하드 록, 베토벤의 교향곡 등 음악의 종류나 수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때는 잘 모르지만, 그 순간이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을 맞이했던 당시, 그 사람의 이상과 현실, 욕망과 현재 사이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영향력이 크고, 오래 간다.

권위적인 가정과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던 어는 한 12살 어린 소년은 처음으로 극장에 가게 된다.

소년은 극장에서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음악을 배경으로 성배의 수호자인 백조의 기사가 나타나 궁지에 처한 여주인공을 구한 뒤 홀연히 사라진다는 내용의 오페라를 보면서 곤경에 빠진 국가를 구하는 백조의 기사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오페라는 바그너의 '로엔그린(Lohengrin)'이었고 소년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바이올린 선율 위로 흐르는 비장함과 긴장감이 가득한 로엔그린 서곡을 들어보면 당시 어린 히틀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히틀러가 어린 시절 들었던 바그너의 음악이 독일의 운명과 세계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음악 가운데 신이 임재 한다고 믿는 독일의 오래된 수도원이 파산지경에 이른다.

남아 있던 고지식하고 지적 호기심이 강한 '벤노(바리톤)', 우직하고 단순한 시골 농부 같은 '타실로(베이스)', 아기 때 수도원에 들어와 세상을 전혀 모르는 순진무구한 '미소년 아르보(테너)' 등 3명의 수도사는 수도원 원장의 유언에 따라 교단의 보물을 들고 이탈리아에 있는 유일한 형제 수도원을 향해 떠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각각 학문, 현실, 사랑이라는 자신들의 성격에 부합하는 유혹에 빠져 뿔뿔이 흩어진다.

방황하던 이들을 다시 칸토리안 수도사로 불러 모으는 것은 이들이 수도원 시절 자주 함께 불렀던 음악이다.

학문에 대한 욕심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벤노가 사제로 있는 성당을 찾아간 타실로와 아르보가 벤노를 일깨우기 위해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라는 개신교 찬송가(312장)를 부른다.

오르간 반주 위로 장엄하고 숭고하게 흐르는 음악은 함께하였던 추억을 불러오고 잃어버렸던 초심을 일깨운다.

3명의 수도사는 다시 함께 길을 떠나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이르게 된다.

2002년에 개봉된 영화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의 줄거리다.

영화의 제목은 "노래하고 기도하며 '신과 함께 가라'. 그리고 선을 행하라."는 찬송가의 가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우리는 수많은 음악을 듣게 될 것이다.

어떤 때는 배경음악처럼, 어는 순간에는 진지하게. 그 음악들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줄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히틀러나 수도사의 사례처럼 음악 듣는 것을 가벼이 여기거나 함부로 들을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영혼이라 불리는 페르난도 페소아는 '불안의 책'에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라고 하였다.

매 순간 이어지는 불안한 운명과 삶을 씻고, 갈아 주기에 음악만 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
유인재 미래도시성장연구소 소장

한 발짝 더 나아가자면,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음악은 정신이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는 산술 활동"이며, 수학자 피터 뷜만은 "신은 세계를 '음(音)'으로 창조하였다."라고 하였다.

'음악과 함께 가는(VayaCon Musica)' 길이 '신과 함께 가는(Vaya Con Dios)'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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