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도(2005) ‘다섯 할매’

<캐릭터로 영화 읽기> 한국 영화 속 그녀(들)

탯줄이 끊기면서 모성의 대지를 떠났다가 피폐해진 영혼으로 마파도에 귀환한 '아들들'을 다섯 할매가 모성의 너른 치마폭으로 감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버럭 역정을 내며 혼쭐을 냈고 뒤통수, 엉덩이를 때려가며 닦달했다. 아프게 깨우치고 일깨워주는 모성이었기에 달디 단 결론마저 수긍하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추창민 감독의 데뷔작 '마파도'(2005)는 350만명이라는 관객 동원력에도 불구하고 내실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일부 억지스런 설정과 보기 민망한 슬랩스틱, 공포+코믹+멜로+액션의 섞어찌개 식 배합 등이 웃겨야 한다는 조급증의 산물이라는 지적이었다. 160억 원을 놓고 펼쳐진 욕망의 이전투구를 휴머니즘적 결말로 서둘러 봉합한 것도 흥행을 겨냥한 해피엔딩 강박으로 설명됐다.

여기에 가공의 섬 마파도와 다섯 할매를 한 축에 놓고, 반대편에 주먹세계의 핏빛 내음을 풍기는 뭍/도시와 두 남자 주인공을 배치시켜 놓은 이항대립식 설정 또한 도식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름다운 전남 영광 앞바다 풍광과 함께 어울린 공동생산/분배/소유의 자족적 공동체마저 도시인들이 농촌지역에 품고 있는 판타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도 타당해보였다. 결국 한국영화 세상에서 언제나 타자(他者)였던 농촌과 노인이라는 두 설정은 이번 경우에도 여전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 마파도에 불어넣는 실한 기운

하지만 이 모든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혐의로부터 영화를 구해낸 것은 볼품 없어 뵈는 다섯 할매들이었다. 열여섯에 시집 와 보름 만에 남편을 잃었거나 천하의 반백정 남편에게 늘 맞아야했으며, 혹은 본처와 첩의 악연으로 애증의 역사를 써왔던 이들 할매들은 지도상에 없는 유토피아적인 공간, 일종의 파라다이스이자 현실세계를 작동시키는 법칙들을 죄다 무력화시키는 블랙홀로서의 마파도에 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기운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노동하는 자'라는 점에서 나온다. 고단한 노동의 역사 속에서 단련된 이들은 천방지축 살아온 뭍의 두 남자를 '빡세게' 교화시킨다. 땀 흘린 이의 노동의 대가를 부당하게 가로채왔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라고 할 수 있는 전직 조폭 재철(이정진)과 비리 형사 충수(이문식)는 다섯 할매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혀 지붕 수선하고 밭 매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배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진리를. 하지만 그렇게 '머리털 나고 땡볕에서 처음으로 15시간씩 일해 가며' 두 남자는 처음으로 온전한 평화와 휴식을 맛본다.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고된 노동 끝에 맛보는 꿀 같은 식사와 한 자락 노랫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제대로 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싸움터에서 살아왔던 두 남자의 폭력적 남성성이 해독되는 이 과정은 그들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본연의 품성이 되살아나는 과정이 된다. 무도한 권력자 행세깨나 하던 충수는 베옷 걸치고 밀짚모자 쓰자 졸지에 지청구를 달고 사는 철딱서니 없는 손주로 변한다. 주먹 세계 규율에 따라 꼬박꼬박 존대말 붙이는 재철 또한 뻣뻣한 '가오' 속에 숨어있던 살뜰한 속내를 조금씩 드러낸다. 고장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고쳐주고, 귀 어두운 제주댁에게 보청기를 선물하는 것이다.

#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모성의 힘

이렇듯 주먹과 돈의 위세에 굴종하고 살았던 두 남자로 하여금 마음의 청정지역을 되찾게하는 힘은 결국 할매들의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모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는 '마파도'의 낙관적 결말을 이끌어낸다. 재철은 김빠진 콜라 반 병과 빵 한 조각의 초라한 사례(謝禮)를 알아보게 됐고, 충수와 형제 같은 유대감을 키워간다. 들끓는 분노로 낫자루를 거머쥔 신사장의 손아귀 힘도 맥없이 풀어지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감동으로 마감하려는 상업영화의 성급함과 강박증의 소산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갈등을 해소시킨 동력이 그저 무릎 꿇고 읍소하는 모성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탯줄이 끊기면서 모성의 대지를 떠났다가 피폐해진 영혼으로 마파도에 귀환한 이들 '아들들'을 다섯 할매가 모성의 너른 치마폭으로 감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버럭 역정을 내며 혼쭐을 냈고 뒤통수, 엉덩이를 때려가며 닦달했다. 아프게 깨우치고 일깨워주는 모성이었기에 달디 단 결론마저 수긍하게 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마파도'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다섯 할매들이 돈과 폭력으로 오염된 세상/남자(혹은 아들들)의 때를 벗겨내는 신명 그득한 한 판 푸닥거리와도 같은 영화다. 로또 열풍이 부채질하는 일확천금의 꿈을 한낱 봄날 한 자락의 꿈같은 것이라고 일갈하는 이 영화는 물론 현실의 매서운 칼날에 베여 속절없이 스러질 판타지임에 분명하다. 당장 마파도를 떠난 재철과 충수, 신사장과 끝순이의 내일이 불안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 마음 속에 마파도는 남아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또 다른 마파도의 꿈을 다시 꾸어도 좋지 않을까.

Character & Actress 여운계 김을동 김수미 김형자 길해연

"당신들은 좀 더 당당해져도 좋다"

'마파도'가 노인을 대상화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힘은 여운계(65, 회장댁) 김을동(60, 여수댁) 김형자(55, 마산댁) 김수미(54, 진안댁)와 길해연(40, 제주댁)등 중견 여배우들의 존재 자체로부터 나온다. 연기현장에서 쌓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영화 '마파도'를 걸판진 한 판 축제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모두 떠나버린 마파도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일구었던 다섯 할매들의 삶은, 곧 고등학교 때나 20대 초반부터 할머니를 연기해야했거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에 서있어야했던 이들 연기 인생의 주변부성과 어울려서 현실감을 더한다. "속 시끄러워 문드러진” 가슴 달래며 현장을 지켜온 세월의 힘이 있었기에 "육지 것들. 건더기 하나도 없는 놈들여” 호령에 힘이 실리고, "인생 별거냐, 고무신 밑창에 붙은 껌 같은 겨. 찐득찐득하니…”의 회한에 삶의 기운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운은 놀라운 흥행성적에 힘입어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영토 확장에 대한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폭무리처럼 분장한 '엽기 할매' 포스터와 홍보 전략은 정작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적잖이 어긋나 보인다. 삶 속에서 자연스레 체화된 다섯 할매들의 할매다움과 고유의 해학성을 '엽기' 컨셉으로 포장한 것은-마케팅 차원이었다 해도-캐릭터들에게, 무엇보다도 이들 여배우들에 대한 온당한 대접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듯 호객행위를 위한 '삐끼' 역할로 소비되기엔 그들의 삶의 나이테가 실로 당당하게 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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