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한 모임을 이끌고 있는 분에게서 청주 중심부에 있는 유적들을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청주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으니 이런저런 자료와 지식이 있겠지 생각한 모양이다. 원체 그런 쪽에 내가 재능이 없음을 모르니 그랬을 게다. 거절할 사이도 아니고 내가 게으른 회원으로 소속된 모임이어서 회원들과 다 안면이 있다. 내게는 그리 긴장감이 없고 잘못한다 해서 누가 심하게 비난할 것 같지도 않다.

오전 열시쯤 중앙공원에 모였다. 걷는 것이 위주인 모임이니 먼저 걷고 "제일교회"에서부터 설명을 하란다. 걸어가며 청주민주항쟁 기념동판과 청주읍성 남문터를 가리키고 주의를 환기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제일교회가 나온다. 순교의 역사를 지닌 곳, 청주의 교육과 민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역할을 감당한 교회다. 코로나19라는 시대적 역병을 만나서는 "교회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하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적어도 교회가 지역민들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표현일 게다.

교수님이 알려줄 곳이 있다며 소개한 곳이 "남석교"가 묻혀있는 곳이다. 1930년대 초반 물길을 바꾸면서까지 일제가 땅속에 매몰시켰다는 80여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란다. 청주 시민이 기억하고 지상으로 그 유서 깊은 다리를 드러내야 한다고 하신다. 지자체에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시행해야 할 일인데 그들을 일깨우려면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생각하는 시민단체들이 앞장서면 좋을 것 같다.

용두사지철당간으로 향했다. 당간 중에 유일하게 건립연대를 알 수 있어 국보다. 읍성 안에 건립된 큰 사찰, 시대적으로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 초였으니 그 기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지역의 상징물로 그 주변에서 많은 만남이 이루어졌을 테니 만남의 의미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우리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는지 진짜 문화유산해설사가 찾아왔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다시 중앙공원이다. 척화비 설명을 한다. 서세동점의 시기, 서로 잘해보자며 장사를 내세워 개방을 요구하는 이들 앞에 갈라지는 팽팽한 여론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서양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정신승리 같은 논리들, 누구도 결정하기 어려운 순간에 밀어붙인 쇄국의 산물이 척화비였다. 그 해에 태어난 나라의 적장자가 며칠 만에 죽는다. '항문폐색', 먹을 수는 있으나 배설을 못하니 살지 못한 게다. 쇄국은 아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경고였을까?

청주 척화비의 운명이 기구했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하수구 뚜껑으로 긴 세월을 보내다 발굴되어 중앙공원에 한 자리를 얻었지만 머리 부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옆자리 망선루에 비교할 수 없는 덩치와 몰골로, 소통하며 살라는 교훈을 전하며 쓸쓸히 서있다. 돌의 운명이 그러하다면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더 극적인 면이 많을까?

중앙공원의 어른이라 할 은행나무, 수령 구백년을 헤아린다는 압각수 앞이다. 조선건국 어간에 감옥에 갇혔던 이들이 대홍수를 만나 압각수 위에 올라 생명을 건지니, 하늘이 살려주었으니 죄가 없다하여 나라에서 석방했단다. 그 사실을 기린 한시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긴 세월 속에 삼십여 미터의 거목으로 자라났다. 무슨 중병이 들었는지 배 한가운데가 콘크리트로 채워졌다. 안됐다. 그런데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해마다 풍성한 잎들을 거느리다 가을이 되면 금빛 은행잎을 선사한다. 그 압각수가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일까? '괜찮다, 다 괜찮다' 힘겨운 시절도 다 지나가고, 지나고 나면 견딜 만 한 시절이라 느껴지고 그립기조차 하단 말을 나는 듣고 싶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육이오동란까지 다 겪은 그 나무를 보며 좋은 시절은 좋은 대로 힘겨운 시기는 또 그런대로 살아가는 연륜의 지혜를 얻고 싶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청주의 몇 군데를 회원들에게 내 나름대로 어설프게 소개했다. 어쩌면 다 알고 있던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게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조금은 긴장된 기억할 만한 의미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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