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1. 신참 변호사

신참 변호사가 우리 로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건너 편 대표 변호사님 방에서 가끔 큰소리가 들린다. 얼마 후 풀죽은 강아지처럼 귀가 축 처진 신참이 내 방을 찾는다. 아무래도 나이대가 가까운 내가 편한가 보다. 법원에서 깨지고 대표 변호사에게 깨지고 있는 병아리를 보니 옛날의 내가 생각난다. 커피 한 잔을 건낸다. "나도 그랬어."

#2. 첫경험

갑자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모공 하나하나가 마치 분수라도 된 것처럼 땀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뇌가 팽이처럼 빙빙 돌았다. 무더운 날 앉았다 일어날 때 느끼는 그런 가벼운 현기증은 아니었다. 귀도 먹먹했다. 병아리 변호사 시절 원격지 형사재판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링거를 맞았지만 이튿날까지 지구의 자전을 온몸으로 느끼는 현기증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공판기일 판사는 피고인을 거칠게 대했다. 판사의 텐션이 심상치 않기는 했지만 나의 의뢰인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주눅들지 않고 판사에게 대들었다. 그 사건은 자백사건으로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는 재판이었기에 의뢰인이 판사를 들이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판사는 선고기일이 아님에도 의뢰인을 구속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간혹 변호사가 자신의 재판진행에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은 경우 변호사에게 핀잔을 주거나 화를 내는 판사들이 있고, 업계에는 그런 판사를 대하는 다양한 필드매뉴얼(?)이 구전되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서 판사와 의뢰인이 씩씩거리며 다툴 때 말리는 방법은 전혀 들은 바 없었다. 피고인 편을 들어 같이 싸울 수도 없고, 눈 돌아간 판사를 달랠 수도 없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판사와 의뢰인간의 충돌은 초짜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날 어떻게 사태를 수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결국 의뢰인은 씩씩거리면서 나와 함께 재판장을 나온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그날 사태는 결과적으로 진정은 시켰던 것 같다.

겉으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척하면서 공판정을 살벌한 공기를 버티며 수습을 했을 테지만, 그때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하다. 연기가 끝나고 난 후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긴장이 풀리며 생존의 시스템이 작동되어 몸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후 스트레스가 과도한 사건을 마치고 왔을 때 사무실에서 잠시라도 잠을 청하는 루틴이 생겼다.

#3. 첫경험들은 쌓인다.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수술중 환자가 수술대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의료인에게 최악의 순간이듯 형사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이 구속을 당하는 것이 최악의 순간이다. 특히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경우라면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수사과정부터 어딘지 모르게 복잡하게 진행된 사건이었다. 피소된 의뢰인은 처음에는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고소인이 각종 이의절차를 진행했고, 석연찮은 이유로 수사 재기가 결정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재수사가 진행되었고 검사는 혐의가 인정된다며 의뢰인을 기소했다.

법원에서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한기만 한다면 절대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나의 사건에 대한 분석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 의뢰인에게 실형이 선고받게 한 적이 없었다. 유죄의 촉이 올 때에는 집행유예로 변호 방향을 잡고 선처를 구했고 내 변론은 늘 성공적이었기에 테이블 데쓰 상황까지 경험한 적이 없었다. 승운이 따랐고 촉도 좋았다.

그런데 선고일 의뢰인에게 일부 유죄가 인정되었다. 범죄를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형이 선고되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의뢰인의 가족들은 울면서 나를 원망했다. 나 역시 경황이 없었다. 전혀 예상조차 못했기에 이른바 패전처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날도 이제는 이유를 알만한 현기증 찾아왔고 병원신세를 졌다.

현기증이 가실 무렵 의뢰인 가족을 설득하여 항소심까지 선임했다. 가족을 구속당하게 만든 바보 변호사에게 항소로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이례적인 결정이었기에 이례적인 결과로 응답해야만 했다.

전쟁같이 재판을 진행했다.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렇게 의뢰인을 죽였다 살리는 첫경험을 했다. 대법원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받았다. 그간 억울한 구금으로 인한 형사보상을 국가로부터 받아내는 첫경험도 했다. 성공한 결과를 얻고나서 의뢰인에게 사과하는 것도 첫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첫경험이었던 이 사건으로 나는 업무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4. 그렇게 변호사가 된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사람끼리 부대끼며 세상살이 하면서 치르는 첫경험은 행복하고 설레는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직업인으로 세상에서 밥벌이하며 치르는 첫경험은 대개 충격이고 배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극복하여야 할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모든 것이 첫경험일 병아리 변호사의 성장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어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몇 번이고 쓰러지면서 버텨낸 나 자신이 대견하다. 그걸 어떻게 혼자서 다 견디고 살았던 걸까. 그렇게 첫경험들이 쌓여 경험많은 변호사가 되었구나. 나를 기른 건 팔할이 첫경험의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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