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2004) '나 영'

캐릭터로 영화 읽기 <한국 영화 속 그녀(들)>

#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행

우체국 제복이 썩 잘 어울리는 나영(전도연)은 조연순(고두심)과 김진국(김봉근)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고,그 현실이 싫다.착하기만 해서 늘 남에게 보증 빚을 떼이고 마는 무능한 아버지.퇴락한 옛 궁궐터 담벼락처럼 무너져 내린 뒷모습을 보는 것도 억장 무너지지만,그 아버지를 모질게 박대하는 엄마의 그악스러움은 정말이지 참기 어렵다.

남이 내다버린 물건들을 번번이 집어오거나,단돈 몇 백 원에 목숨 거는 궁상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나영은 결국 선언한다.자신을 낳고 키운 ‘그 사람들’처럼 ‘부모 자격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어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박흥식감독의 두 번째 영화 <인어공주>는 엄마 되기를 거부하는 딸이 어떻게 자신의 회의를 딛고 엄마 되기를 수락하게 되었는가를 들려준다.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를 긍정함으로써만 엄마의 자리에 제대로 가닿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그리고 이를 위해 잠시 현실의 엔진을 쉬게 한 다음 판타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마술을 부린다.

자신을 옭죄는 너덜너덜한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꾸던 나영은 뉴질랜드로 도망가는 대신 아버지가 숨어버린 곳,하리의 바닷가로 찾아간다.그곳에서 자신을 ‘언니’라 부르는 스무 살 엄마와 동거하며 나영은 억척스럽기 만한 ‘엄마 연순’ 이전의 역사를 발굴하고 복원한다.

아무데서나 퉤퉤 내뱉는 가래침의 기원과 함께,그도 자신을 버린 엄마를 그리며 눈물짓던 딸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또한 엄마,아빠라 이름 불리기 전 연순(전도연)과 진국(박해일)의 미소가 얼마나 맑고 싱그러웠는지를,그들이 함께 써내려가기 시작한 사랑의 역사가 얼마나 풋풋했던지를. 엄마와의 악다구니를 멈추고 물끄러미 관찰하는 입장에 서면서 나영은 알게된다. “평생을 월급 한 번 가져다 준 적 있어,뭐를 했어?” “죽으면 죽나보지” 험악한 언사를 내뱉던 엄마가 “사람이 우선 착하고 봐야지라” 말하던 섬처녀였음을.“저는 괜찮습니다.감사합니다.많이 보고 싶습니다” 수줍은 연심을 접수하던 ‘선상님’이 ‘낯짝조차 없는 벼룩이’가 될 수 있는 게 삶임을. 그제서야 나영은 엄마와 아빠를 향한 짜증과 원망이 당초 겨냥했어야 할 제 과녁을 찾아낸다.사람과 사랑을 그토록 변화시킨 세월의 무심한 폭력,삶의 잔인한 희롱 앞에서 그들과 연대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다.부질없는 자기연민을 거둔 성숙한 인간으로서,무엇보다도 그들의 딸로서. # 그리고 자맥질은 계속된다 판타지의 세계에서 나영과 연순은 딸과 엄마의 관계가 아닌 언니와 동생으로 소통한다.이를 통해 딸은 엄마 이전의 인간,엄마를 넘어선 존재로서의 엄마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평생을 말하고 싶었으나 남편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미안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엄마의 진심을 어렵게 이끌어낸다. 그렇게 극심한 부정을 경유해 도달한 넉넉한 긍정의 텃밭에서 나영은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된다.
하지만 <인어공주>에는 삶을 대책 없이 긍정하는 낙관론 대신 조심스레 저어하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뉴질랜드의 영롱한 바다가 해녀들이 물질하는 우도의 바다로 연결되고 다시 엄마가 때밀이하는 목욕탕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타이틀의 이미지 연쇄는 이상적 판타지의 공간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바로 이어 붙인다.화사한 판타지와 눅눅한 현실이 이렇다 할 완충장치 없이 맞닿아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영이 엄마 되기를 자청했다고 해서,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동화 속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아였던 어머니는 가난한 남편과 평생을 살며 허덕였고, 그 징그러운 삶의 누추를 끔찍해했던 딸은 다시 고아인 남자를 만나 딸을 낳아 기른다.사진 속 할아버지를 용케 찾아냈던 나영의 딸이 다시 나영의 나이가 돼서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지도 아직은 알지 못한다.

이 점에서 위기에 놓인 가족을 진통 끝에 봉합하는 <인어공주>는 동시에 낭만적 사랑이 완결되는 종착지로서의 가족에 대한 판타지를 위협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게나 맑고 화사했던 연순과 진국의 사랑도 잔인한 삶의 채찍질 앞에서 하릴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다는 건 역시 유행가로나 꿈꿀 일이던가.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처음 바다 위 구경을 나갔던 인어공주 아리엘은 사랑에 빠진 대가로 목소리를 내어주었다가 왕자와 함께 하지 못한 채 결국 공기의 요정이 되고 만다.

빨간 태왁 부여안고 우도 앞바다에서 자맥질하던 연순은 사랑하는 남자를 얻었으나 젊음의 생기와 삶에 대한 긍정을 잃었으니 이 또한 비극인가.하지만 <인어공주>는 묻는다.

그렇게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거나 잊어버리면서도 정작 자맥질을 멈추지 않는 것,그것이 바로 삶 아니겠느냐고.그 곳이 우도 앞바다든 목욕탕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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