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와니와 준하(2001) '와니'

<캐릭터로 영화 읽기 한국영화 속 그녀(들)>

혹시 그녀는 공주병 환자일지도 모르겠다.겨우 달팽이를 보고 자지러지다니,아무리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덩치라지만 명색이 제 밥 벌어 먹는 스물 여섯 아니던가.김용균 감독의 데뷔작 '와니와 준하'(2001)는 고작 달팽이를 무서워하던 와니(김희선)가 어떻게 달팽이쯤은 무서워하지 않게 됐는가를 이야기한다.그리고 이는 고스란히,어떻게 우리들-혹은 우리의 '아이들'은 상처를 극복하고 '진짜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귀 기울일 만한 사례로써 접수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의 제도와 질서가 부재한 빈 집에 저희들끼리 둥지를 차린 새끼들의 성장기로.

# 달팽이를 무서워하는 달팽이

와니가 처음부터 달팽이를 무서워했던 건 아닐 것 같다. 팬티 차림인 채 대문 밖으로 내몰리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취향의 몰두 혹은 욕구 충족을 위해 대가를 치를 만큼 용감했었으니까. 처벌과 금지의 두려움에 앞선 만화에 대한 갈망으로 엄마 지갑에 손을 대더니, 대학도 거부하고 일찌감치 애니메이터의 길로 나서지 않았던가.

세상으로부터 승인받지 못할 이복동생과의 사랑도 숨김없이 드러내던 그는, 1년 전 시나리오 지망생 준하(주진모)에게 '그냥 같이 사는 거'라며 선뜻 자신의 침대 한 쪽을 내줄 만큼 '용감한 데가 있'다. "여기 있는 동안엔 절대 굶기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너한테 부담주고 지 않"다며 통상적인 성별 역할 수행을 뒤바꾸던 것 또한 이 겁 많고 생각 많은 아가씨의 내면에 '씩씩한 전사(戰士)'가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녀 안의 씩씩하고도 용감했던 전사는, 햇빛 찬란히 부서지던 어느 여름날,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었다. "영민이(조승우)와 함께 가고 싶어요. 영민이를 사랑해요,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았던 진심의 토로 이후, 와니는 마음의 감옥 속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자물쇠를 잠근다. 나선형의 껍데기를 지고 다니며 수시로 숨어버리는 달팽이가 무서운 건, 그러니 감옥 속의 자신을 확인하는 고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생 영민과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빈 집에 준하라는 동거인을 들임으로써 와니는 결국 영어(囹圄)상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와니의 자존을 해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둔 연인의 존재와 미더운 응시에 힘입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첫사랑의 아픔을 치명적인 낙인으로 간직하고도 하루하루의 숙면을 가능케하는 건 내 가슴을 짓누르던 그의 팔의 무게라는 것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영혼의 정서적 공간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야말로 일상을 새록새록 힘차게 한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마음을 알기는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눈을 보고 진심을 이야기하면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을.

호된 여름감기 끝에 이루어지는 이 같은 자각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피 흐르던 상처에 드디어 딱지를 앉게 한다. 6년 만에 동화부를 떠난 그녀는 이제 원화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난 그녀 안의 '전사'와 함께 뚜벅뚜벅 힘찬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 상처를 먹고 자라 어른이 된다

'와니와 준하'는 관객의 감정을 용의주도하게 조직하고 목적지까지 치밀하게 이끌고자 하는 의도같은 건 없다. 대신 거리감과 절제의 태도를 통해 20대의 길목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의 풍경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하면서 멜로영화의 새로운 영토를 일군다. 뿐만 아니라 근친 간의 사랑이나 변형 가족, 동성애, 장애인 등의 소재를 늘 그러함직한 풍경으로 자연화시킨다는 점에서 좀 더 야심적이다.

"뭐든지 남 눈치 같은 거 보지 말고" 살고자 하는 영화 속 그들은 앞으로도 금지된 많은 것들을 열망할 것 같다. 그렇다면 결혼을 전제하지 않고도 한 침대에서 눈 뜨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티격태격하는 같은 성(性)의 연인들 모습이 일상이 된다해도 세상이 당장 결딴날 것처럼 호들갑 떨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됐든 상처를 먹고 자라야 진짜 어른이 되는 법이니, 낯설거나 자연적이지 못하다며 금기시하고 두려워할 삶의 방식이 어디 있겠느냐고, 이 예쁘고 뽀송뽀송해서 살짝 의심이 들기까지 하는 영화는 묻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와니와 준하들이 살아갈 세상은 정감 있는 파스텔 톤 애니메이션으로 포위된 이 '순정영화'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와니와 준하의 손을 맞잡게 한 운명적 사랑의 판타지가 영 미심쩍기도 하거니와, '단 둘이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같이 사는' 평화가, '세상의 모든 간섭 때문에 지리멸렬해지고 마는' 지옥으로 돌변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레 걱정할 일이 무엇인가. 어떤 삶이 됐든 자기 안의 '용감한 전사'를 다시 잠들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삶은 능히 살만한 것이 될 테니 말이다.

/ 박인영·충북대강사

Character & Actress 김희선 "그녀의 변화,다시 볼 순 없나요?"

잠시 서울에 다녀오겠다며 준하마저 떠난 빈 집에 비 맞아 생쥐 꼴이 된 와니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온다. 느닷없이 텔레비전 화면이 켜지고 준하의 살뜰한 마음씨가 드러나는 메모를 읽은 와니. 넋 나간 사람처럼 냉장고 앞에 서 있다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음을 조금씩 뱉어내는 그 순간, 관객들은 문득 초조해진다. 꼼짝 않고 와니를 응시하는 카메라와의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마침내, 깊은 슬픔을 토해내는 오열로 롱 테이크가 마무리될 때 이런 초조감은 안도감으로 바뀌면서 김희선(29)이라는 이름의 '스타'는 '배우 김희선'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다.

'와니와 준하'를 찍을 당시 김희선은 1년 전 누드집 파문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김희선이 변했다"는 풍문과 함께 와니가 돼서 나타난 김희선은 과연 통통 튀는 신세대 아이콘에서 멀찍이 벗어난 모습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와 화장기 없는 맨 얼굴, 목소리 톤과 눈빛을 잔뜩 낮추고 죽인 그는 실로 낯설었지만, 20대의 성장통을 연기하는 청춘스타의 발견이라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종전까지의 경황없던 촬영 일정과 달리 스스로 캐릭터의 감정을 해석하고 만들었다는 배우로서의 체험은, 그러나 이렇다 할 후속작업 없는 단절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앞으로도 그런 훈련이 계속 이어진다면 굉장히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배우"라는 김용균 감독의 평가가 "제대로 잠재력을 발휘했다"는 또 다른 평으로 이어질 그의 후속작은 언제쯤 만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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