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박철완 / 청주시청 총무과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내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내기’ 좋아하기로 치면 아마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내기를 걸어야 더 재미있기 때문일까?

사실 나는 내기 걸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어쩌다 하게된 나의 부끄러운 ‘내기’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 청주시 문화예술체육회관 문예담당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날은 청주시립교향악단 수시 연주회가 있어서 나는 공연장 안팎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시작을 채 5분도 남겨놓지 않은 시간에 대공연장 좌측 입구에서 여러 사람들이 입장하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실 직원들과 공연장 안내 도우미들은 늘 하는 일이지만 공연시간 임박해서는 매번 긴장을 하게 된다.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소중한 시간을 내서 어렵게 공연장을 찾았는데 잘못된 서비스 때문에 혹시라도 기분을 망치거나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번의 실수로 청주예술의 전당 1천277석을 꽉 채워보자는 우리들의 대단한 목표달성이 어려울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다소 긴장한 상태로 그 자리로 가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님 한분이 도우미와 아이의 입장문제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그날 공연은 8세 미만의 입장이 불가한 공연이었고 그 아이가 마침 8세 미만인 게 문제가 된 것이다.

도우미는 입장이 안된다며 그 이유를 정중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어머님은 부득불 입장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이런 광경은 공연이 있을때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역에서는 아직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는 2005년 들어서 공연문화를 한차원 높이기 위해 공연마다 등급을 정해 연령제한을 확실히 하기로 했다.

물론 자녀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을 제대로 즐기려는 매니아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서 다시한번 설명했지만 그 어머님은 끝까지 물러서질 않았다. 처음에는 ‘여기까지 왔으니 무조건 들어가겠다’고 우기시더니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예매할 때는 나이제한이 없었는데 왜 못들어 가게 하냐’고 화를 내셨다.

당황 스러웠다. 지금까지는 이정도 설명과 설득이면 아쉬워 하면서도 대부분 이해하고 아이를 맡기거나 환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어머님은 절대 양보할 뜻이 없어 보였다.

혹시나 싶어 담당직원에게 ‘홈페이지에 정말 그렇게 홍보했냐’고 물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더더욱 확신을 갖고 ‘설사 지금 당장 다소 소란한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까지 느끼면서 이번 기회에 어머님이 뭔가 느끼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저와 내기 하시죠?”

“지금 사무실로 가서 인터넷을 확인해 보고 만약 어머님 말처럼 나이 제한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면 제가 티켓값을 두배로 물어드리지요” 그렇게 나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잠깐동안 우물쭈물하던 어머님도 더 이상 할말이 없는지 나를 따라 함께 사무실로 가서 청주예술의전당 홈페이지(www.cjac.or.kr)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왜 내가 이글을 쓰게 되었는지 여러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즉석에서 티켓의 두배값을 물어줘야 했고 분을 삭이지 못한 어머님은 다시는 예술의 전당에 발걸음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로 돌아가셨다. 홈페이지 운영업체에서 우리가 보낸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어머님과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 분을 찾아 정식으로 사과하고 다른 공연 초대권을 보내 드리기로 했지만 끝끝내 그분을 찾지 못했다. 오늘 지면을 통해서나마 사과드린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래서 ‘내기’는 함부로 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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