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성댁 강분석씨 귀농일기 묶은 산문집

|'씨앗은 힘이 세다' |강분석| 푸르메|

비 내리던 어느 새벽,밭에 올라 새끼손가락만큼 올라온 콩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예쁘고 장하다는 느낌을 넘어 감동이 밀려왔다.초록색 콩대를 보며 콩알을 넣을 때의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떠올리며 씨앗은 정말로 힘이 세구나.중얼거렸다.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그저 조금 도와주는 것일 뿐. - <앙성댁 쪽지>

‘사람과 자연,농촌과 도시는 하나입니다.'

장호원,감곡과 함께 꽤나 유명한 복숭아 산지인 충주 앙성.40평생 서울에서만 생활했던 도시 아줌마가 복숭아 과수원을 하며 벼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귀농과 함께 앙성댁이라는 이름을 얻은 강분석씨(51)가 남편과 함께한 앙성에서의 귀농일기를 묶어 산문집을 펴냈다.정갈한 한식 밥상처럼 담백한 문체로 전하는 삶의 이야기는 ‘씨앗은 힘이세다’.도시인들에겐 생명의 기억만을 줄 뿐이라고 해도 농촌은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앙성닷컴(http://www.angsung.com )을 통해 귀농일기를 써온 저자는 꽤나 유명인사다.서울의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흙의 교훈을 전해온 그녀이기에 늦깎이 농부가 돼 깨우친 삶의 공명은 그 울림이 더욱 크다.

서울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강씨는 한때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광고회사와 외국 기업에서 잡지편집과 홍보 업무를 맡아 일했으니 호흡으로는 9년째 농사 짓고 산 삶이 더 짧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음의 철학’과 ‘신의 친구 에픽테토스의 대화’를 번역한 ‘잘 나가는’ 도시 근로자,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친근한 시골 아낙인 ‘앙성댁’으로 돌아왔다.

97년 남편과 시골행을 결심하고 귀농 9년차에 접어든 앙성댁은 씨앗의 놀라운 생명력을 통해 ‘땅’의 의미를 깨우친다.제 몸무게의 몇 백 배나 되는 흙을 뚫고 초록색 새싹으로 올라오는 콩알을 보면서,또 일주일이 넘도록 끝없이 피사리를 해가며 키운 벼를 베며 초보 시골 아낙은 “아이구 내 새끼!”하며 벼를 가슴에 부둥켜 안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네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높은 벽,애호박과 고구마를 다 키워놓고도 경운기 길을 내주지 않아 거두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피눈물 나는 경험도 털어 놓았다.갓난아기 머리만큼 잘 익은 봉숭아들이 하루아침에 멧돼지 밥이 되거나 폭우에 낙과가 됐을 때의 애통함은 말로 다 표현하지도 못했다.

귀농일기에는 푸른 희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갈등과 반목,실망과 회의를 끌어 안고,자립도 밥벌이도 안되는 농사와 사람 일로 어려움을 겪으며 그렇게 낭만을 거둬낸 가난한 농촌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농사는 은혜와 위로,가르침을 주지만 때로는 아득한 막막함으로 저를 내몰기도 합니다.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들일이 그렇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그렇습니다."

지금껏 가꿔온 이 땅에서 언제까지나 농부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앙성댁.책에는 괜찮은 농부가 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운 ‘귀농 10계명’이 정리돼 있다.놀라운 힘을 발휘해 새싹을 올리는 콩알처럼, 앙성댁은 그렇게 씨앗이 가르쳐준 삶의 진실을 충주 앙성에서 피워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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