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직지축제가 9월 4일 개막, 오는 10일까지 청주 예술의 전당 일원에서 펼쳐진다. 올 4회째를 맞은 이번 축제는 ‘나눔’을 주제로 직지의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할 예정이다.

청주 문화재화중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은 역시 직지일 것이다. 지난 1985년 당시 토지개발공사가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수행하던중 흥덕사지 일대에서 ‘淸州牧外 興德寺’ 명문이 새겨진 금구(쇠북)를 발견했다.

1377년(고려 우왕 3년) 직지를 인쇄한 곳이 청주 흥덕사였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아직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적지 않게 간직하고 있다.

금속활자로 책을 찍었다면 그것에 사용된 활자가 함께 출토되는 것이 당연하다. 직지 상ㆍ하권에는 대략 3만개 정도의 금속활자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아직 한 톨의 금속활자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시 발굴팀은 활자본(책) 못지 않게 그것을 찍은 금속활자도 중요하다고 판단, 금속탐지기로 일대를 ‘수색’했으나 이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는 ▶당시 흥덕사가 비용만 대고 인쇄는 다른 곳에서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책을 찍기 위해 사용후 남은 활자를 모아 또 다른 금속활자를 주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 남아 있다. ‘청주의 직지’를 위해서는 위험한 가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흥덕사 금속활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흥덕사는 행정적으로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위치하고 있다. ‘운천동’은 순우리말 지명 ‘구루물’을 한자식으로 옮긴 것으로, 일대에 오래 된 우물이 존재해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운천동에는 고지도 등과 비교한 결과, 4개의 오래된 우물터가 현존하고 있다. 이동주 직지세계화추진단장 등 일부 전문가들은 이 4개의 우물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재 면단위 지역에서는 행정 최소 단위로 ‘里’를 사용하지만, 도시지역에서는 ‘洞’ 자를 붙이고 있다. 이중 ‘洞’은 ‘같은 우물을 사용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수도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의 과거 사람들은 한 우물을 공통적으로 사용했고, 이 우물은 마을사람 특히 아낙네들의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同’(한께 살다)에 ‘삼수변’(우물)이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70년대 경주 안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처음 실시했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신라 전시대의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됐다. 국립 경주박물관이 안압지 발굴유물만 가지고 특별 전시관을 지을 정도였다.

지역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황 때문에 운천동 4개 우물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물 속으로 던져진 금속활자나 다른 유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물 바닥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하고 있다.

직지 금속활자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찍은 활자도 그것에 버금가게 중요하다. 책과 활자는 실과 바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 문화ㆍ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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