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사람들-1>

오늘의 문화인물 (4)

직지축제를 기념해 한국공예관은 ‘직지와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기획했다.충북에서 활동하는 장인 가운데 고인쇄 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 금속활자장 오국진,배첩장 홍종진,한지장 안치용,모필장 유필무의 작품을 전시,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가치를 공예적 측면에서 접근한 전시다.

금속활자가 발달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철을 다루는 기술과 종이를 만드는 기술, 조판하는 기술 또한 앞서 있다는 뜻이며 동시대 과학문명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간접 증명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 책 ‘직지’는 프랑스에 있지만, 무형의 문화자산에 맥박을 불어넣고 있는 이들이 있어 직지의 가치도 빛날 수 있다.

오늘의 문화인물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기획은 이들 네 명의 장인을 조명한다.

#금속활자장 오국진

국내 유일의 금속활자장인 동림 오국진 선생(63)은 직지 속의 공예명장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고려 및 조선의 금속활자를 실증적으로 재현해낸 주인공으로 이번 전시에선 어미자와 활자본, 활자판과 주형틀 등 금속활자 관련 작품 10여점을 전시한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동림 오국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철제 오옥진 선생에게 서각을, 서예가 우송 이상복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하고 이철우 선생에게는 주물기법을 사사해 지난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으로 지정됐다.

한학자였던 조부 밑에서 한자와 글쓰기를 배운 그는 대전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와 주물공장, 충남도청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면서 한국서예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우송선생으로부터 동림(東林)이라는 호를 받은 그가 직지를 만나 쇳물을 녹이고 활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2년이다. 직지가 금속활자임을 증명해내기 위해 떨어져나간 직지 앞장을 다른 장의 글자에서 채자(採字)해 와서 복원했다.

활자 주조법에 대한 옛기록을 모조리 찾아보고 직접 실험을 하면서 옛길을 더듬어나간 그는 복잡한 공정을 통해 금속활자가 얻어진다는 것을 증명했고 1986년 마침내 떨어져나간 앞장을 뒷장과 똑같은 서체와 방식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내친김에 직지 상하권을 모조리 복원한 그로 인해 직지는 2001년 비로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대동여지전도를 복원했으며 93년에는 한글최초 금속활자 월인천강지곡복원과 주조법을 규명해냈다. 이외에도 KBS지역대상 지역문화역사부문 대상 수상(1996), 남북전통공예교류전(2005-2006)에 참여했다.

현재 선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몸이 불편한 상태로 딸인 오선화씨가 선생의 뒤를 잇고 있다. 전수관에서 나무와 쇠를 다듬은 그의 손길이 멈췄지만 ‘사람이 얼이 있어/ 말이 생기고/ 서로의 뜻 널리 펴고자/ 글이 생기니/ 슬기 더해 쇠붙이 녹여/ 글자 만들고/ 주자(鑄字)라 이름하여/ '직지'(直指) 책 찍으니/ 그 어느 겨레런가'하고 기록한 자긍심만큼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배첩장 홍종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홍종진 선생(56)은 고 윤병세 선생에게 배첩기술을 사사했으며 동신당표구사를 창업(1975)한 이해 활동해오다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배첩장) 김표영 선생으로부터 배첩기술을 이수받아 1999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배첩장)로 지정됐다.

이번 직지와 사람들 특별전에선 장정 방식별로 구분한 서적 6점과 능화판 제작물 5점, 2005년 유네스코 직지 상장으로 사용됐던 두루마기용 한지상장 등 배첩 관련 작품 10여점을 내놓았다.

배첩(褙貼)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와 액자 병풍 등을 만들어 아름다움은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기법으로 일제 때 들어온 말로 ‘표구(表具)’라고도 부른다.

선생이 배첩과 인연을 맺은 것은 16세 때다. 우연한 기회에 청주의 한 표구점에서 일하면서 윤병세 선생을 만났고, 서화나 수예품 뒷면에 한지를 붙이는 배첩과 제책, 병풍과 액자 제작을 위한 목공까지 다양한 기술을 혹독하게 교육받았다.

이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배첩장 김표영 선생으로부터 3년간 사사받으며 국내 대표적 배첩장인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노력을 거쳐 지난 2004년 청주시는 150평 규모의 배첩전수관을 지어 그로 하여금 배첩을 전수하도록 하고 있다.

수백년을 견딜 수 있도록 좋은 풀 만드는 데만 10년을 투자하고 있는 그는 배첩전수관을 통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선생은 배첩이 전통공예기술로 문화재적 차원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기능보유자로서 그 맥을 잇고 있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세계도서전시회에 참가해 장정시연을 펼쳤으며 현재 청주시배첩전수교육장 관장,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보존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첩장은 조선 초기에 도화서(圖畵署)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배첩의 제작기법 혹은 형태는 액자·병풍·족자·장정 및 고서화(古書畵)처리의 다섯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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