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ㆍ독립영화ㆍ저예산영화 등 인디영화로 불리는 작은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내외 작품을 막론하고 스타나 유명 감독 없이는 단관 개봉도 어려운 실정이다.

인디영화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다양한 인디영화가 개봉될 확률이 점점 더 줄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디영화도 스타ㆍ유명감독 시대(?)
올해 베를린영화제 음악상 수상작인 홍콩 팡호청 감독의 '이사벨라'는 7월 개최된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으나 극장을 잡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수입사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는 8월 말 7~8개 상영관에서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이달 28일 명동CQN에서 단관 개봉하는 것에 그쳤다.

지명도가 있는 유명감독의 작품도, 홍콩의 유명스타 출연작도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나마 명동CQN에 걸 수 있었던 것은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가 명동CQN의 상영작 프로그래밍과 홍보를 대행하고 있기 때문.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극장에서 거절당했다"면서 "남자배우가 좀 더 잘생겼으면 좋았겠다는 말에는 힘이 빠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의 최신작 '유레루'는 CGV,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상영관 체인에서 서로 상영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면서 "이제는 인디영화도 인기배우나 유명 감독의 꼬리표를 달지 않고서는 단관 개봉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수입사들도 이런 흐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

인디영화뿐 아니라 일반 상업영화도 함께 수입하는 유레카픽쳐스의 강재규 팀장은 "인디영화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스타ㆍ유명 감독 위주의 인디 영화만이 살아남는 현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다양한 영화를 수입하고 싶어도 손해 보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작품성이 있는 작품의 경우도 스타나 유명 감독이 없으면 수입을 망설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독립영화의 경우는 사정이 더 나쁘다. 독립장편영화 중 1년에 몇 편은 극장에서 소규모로 상영되기도 하지만 단편 같은 경우는 영화제가 아니고서는 아예 상영 기회조차 없다.

국내 최대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는 "극장을 잡는다고 해도 홍보ㆍ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고 부가판권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현재로서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생겨야 숨통이 트일까,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 회사에는 500여 편의 단편영화가 개봉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고 덧붙였다.

◇영세 인디영화 수입사 어려움 가중
인디영화를 주로 수입해 온 영화사들은 최근 극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 1월 영화사 스폰지가 종로 시네코아 두 개 상영관을 임대해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를 개관한 데 이어 4월 강남구 신사동에 스폰지하우스(압구정)를 문열었다.

영화사 미로비전 역시 10월 말 종로구 신문로1가에 영화상영관 '미로 스페이스'의 문을 연다. 2002년 7월 종로구 관훈동에서 잠시 동안 운영됐던 '미로 스페이스'가 재개관하게 된 것.

이모션픽쳐스는 이미 종로구 낙원동 필름포럼(구 허리우드극장)을, 백두대간은 광화문 씨네큐브를, 동숭아트센터는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를 각각 운영 중이다.

이들 주요 인디영화 수입사가 자체 운영 극장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수입한 영화를 걸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마련하겠다는 것. 이런 흐름에 뒤처져 있는 영세 인디영화 수입사들은 더욱더 작품 걸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1일 필름포럼에서 개봉한 러시아 영화 '리턴' 수입사 위드시네마 관계자는 "수입한 지 3년 만에 영화를 개봉하게 됐다"면서 "꼭 극장을 잡지 못해 개봉이 늦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세 수입사들이 극장을 잡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극장을 갖고 있는 인디영화사들도 사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근 외화 '나인 라이브즈'를 개봉한 동숭아트센터는 이 영화를 하이퍼텍 나다와 CGV인천 인디영화관에 걸었다.

동숭아트센터 관계자는 "작품이 좋아도 두 개관 이상 걸기가 무척 어렵다"면서 "예술영화 관객이 거의 없는 지방극장에 얼마나 관객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인디영화 상영공간 턱없이 부족
인디영화는 주로 씨네큐브ㆍ필름포럼 등 아트플러스 체인극장에서 상영된다. 아트플러스 체인은 전국적으로 18개, 예술영화전용극장을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21개의 극장에서 인디영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상영관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발전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부정기적으로 인디영화를 상영하는 비상설 공공 상영시설을 포함, 인디영화 상영공간으로 전국적으로 70여 개의 극장이 확보돼야 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현재보다 50여 개 가량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것.

아트플러스 체인 중 올해 새롭게 가입된 CGV 인디영화관은 상암ㆍ강변ㆍ인천ㆍ서면 등 4개관을 확보하고 있다.

영진위는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아트플러스 체인에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인디영화 관객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CGV 인디영화관은 현재 한국 인디영화를 위주로 같은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영화와 다른 수입사에서 들여온 인디영화를 걸고 있다.

인디영화를 수입하는 한 영화사 관계자는 "인디영화는 2주 이상 상영해야 입소문을 타고 그나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데 CGV 인디영화관에서는 일주일 이상 걸리기 어렵다"면서 "상영 패턴이 달라 CGV인디영화관에는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한국 인디영화 상영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외화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면서 "상영작 요청은 많고 공간은 제한돼 있어 CGV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예술영화전용관ㆍ독립영화전용관 건립 미확정
사실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우선시하는 인디영화 상영과 관련, 이윤을 추구하는 멀티플렉스 체인에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인디영화를 상영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운 상황.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CGV 인디영화관에서는 우리도 틀기 망설여지는 다큐 '사이에서'나 '브레인웨이브' 등 한국독립영화를 상영한다"면서 "기업에 더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진위는 현재 독립영화전용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영진위와 한국철도공사와 공동 추진해왔던 서울역사(驛舍)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은 올 초 백지화됐다.

독립영화전용관은 한국 독립영화를 위주로, 예술영화전용관은 작품성을 인정받는 인디영화를 위주로 상영하는 극장을 말한다.

영진위 국내진흥팀 김보연 대리는 "예술영화전용관보다 독립영화전용관이 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독립영화전용관 건립을 먼저 추진하고 있다"면서 "내년 여름 개관을 목표로 추진 중이지만 부지 선정작업도 어렵고 기존 영화관을 임대해 개관하는 것도 쉽지 않아 아직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관광부는 올 초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후속대책으로 인디영화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부 영상산업진흥과 이해도 사무관은 "스크린쿼터 이후 한국영화산업 지원방안에 인디영화 지원방안도 포함돼 있다"면서 "이달 말 발표 예정으로 인디영화의 제작ㆍ배급ㆍ상영 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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