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스님 / 관음사 주지

深觀能禮所禮― 皆從眞性緣起하며 深信感應이 不虛하야 影響相從이니라.

절을 올리는 이와 절을 받는 이가 모두 참된 성품으로 인연하여 일어난 줄을 깊이 관하며, 감응함이 헛되지 않아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따르는 줄을 깊이 믿을지니라.

#능례와 소례

예불할 때는 ‘깊이 관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처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관하라는 것일까요. 예배하는 나(能禮)와 예배 받는 부처님(所禮)이 진성의 인연을 쫓아 일어난 것임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례와 소례에서 能은 곧 주체요, 所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곧 능례는 절하는 사람을, 소례는 그 절을 받는 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불하는 자신과 예배 받는 대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불이(佛二)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부처님은 대상으로 있는 것이지, 정말 참 예불은 절하는 자신과 절 받는 부처님도 없어져야 비로소 참다운 예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대상이라는 부처님께 절을 한다면, 어떤 상(像)에 절을 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진성연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참다운 성품은 특별한 모습이나 실체가 없지만 인연이 화합하면 갖가지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곧 기도를 열심히 하면, 자신의 힘에서 가피가 오는 것이지 어떤 힘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부처님이라는 인연을 만나서 나타나는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타력을 의지하되 자력을 믿어라는 말입니다. 어떤 절대자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구제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연기는 因緣生起의 준말. 인연생기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냥 혼자 독불장군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의상존한다는 말입니다.



#감응

지눌스님의 ‘깊이 믿어라’는 말은, 진성연기를 깨닫고 기도하면 그 감응이 형상과 그림자, 소리와 메아리가 서로 따르는 것처럼 헛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긴 것은 형상이 길기 때문이며, 메아리 소리가 큰 것은 원래의 소리가 큰 까닭입니다.

결국 형상이 분명하면 그림자도 단정하고 소리가 부드러우면 메아리도 부드럽게 들리는 이치입니다. 감응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이 정성을 드리는 것만큼 감응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들여 예불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소리를 자신 안에서 크게 듣는 일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처도 잊고 나도 잊어야 참 기도가 됩니다. 예불할 땐 오로지 예불하는 그 시간에 푹 빠져야 합니다. 공(空)을 설명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말은 텅 비었다는 말도 아니고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마치 폭포수처럼 물이 계속 흐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본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것도 무상하다고 하지만, 연속적으로 보는 무상이 아니지요. 그러나 시간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그것이 무상이고, 연속적인 그것은 존재입니다. 이것을 일러 ‘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공의 개념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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