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 시인

북한의 핵실험을 두고 ‘벼랑끝 전술’이라고 하지만 이를 ‘물망초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을 향해 계속하여 북한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관심을 끌어내어 체제 안전을 보장 받으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8년 NPT가입을 시작으로 해서 1, 2차 북핵 위기를 거쳐 지난 해 9.19공동성명과 이번의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끝없이 요구하는 것은 체제의 안정보장이다.

체제의 인정과 안전보장을 위해 핵실험을 하는 북한의 태도가 잘한 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핵실험을 했다는 모순된 논리도 문제려니와 특히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군사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군사모험주의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야당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PSI구상에 우리 정부가 전면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하지만 남북문제는 감정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세계 70여개국 해상검문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과 우리는 처지가 다르다. 우리가 PSI에 적극 참여하여 해상에서 북한선박이나 함정과 부딪친다는 것은 무력충돌을 의미한다. 무력충돌도 불사하면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모험주의 역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은 94년 6월에도 북폭 시나리오를 검토한 바 있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공공연하게 북한정권 붕괴를 거론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군사적인 것을 포함한다고 할 때 정작 전쟁의 피해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무력충돌을 한다면 그 장소가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가 된다. 그리고 개전 일주일 안에 백만 명이 희생될 수 있다는 그 인명이 미국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그런 무거운 상상은 차치하고라도, 계속되는 북미간의 대립과 긴장으로 인해 당장 주식시장과 코스닥 시장이 요동치고 재계가 사실 가장 타격을 받고 긴장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 정부가 대북압박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려고 한다고 말을 하지만 이런 미국정부의 봉쇄정책이 추구하는 다른 목적에 대해 지적한 백락청 교수의 견해는 귀담아들을 대목이 있다.

백교수는 “미국의 압박과 봉쇄가 북의 정권을 오히려 굳혀주고 체제의 진화를 늦추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진짜 속셈은 무력침공 또는 군사적 압박에 의한 정권 전복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북의 정권 전복에까지 안 간 채 한반도의 긴장이 유지되기만 하는 상태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득이 되는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사일 방어(MD) 등 미국의 국방예산 확대에 유리하고 일본의 우경화와 미일동맹 강화에 직효약으로 작용하며 남한이 미국과 좀 더 대등한 동맹관계를 달성하려는 노력에 제동을 거는 구실로도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카드가 북을 압박함으로써 남을 묶어두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북 정권의 전복보다는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경제대국 남한을 예속적인 위치로 잡아두는 일이 훨씬 더 절실한 문제”이며 미국의 단기적 국익을 챙기는데 상당히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북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다른 요구를 수용해야 하고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해 왔다. 그런 점에서도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는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민족의 미래와 평화적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남한 내 다양한 각계각층의 노력에 제동을 걸고 곤경에 빠뜨리곤 한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어려운 대결국면이 부시정권의 임기까지 합쳐 5년 이상은 가리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만성적 위기 상황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명처럼 전쟁이나 대결구도가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화해와 평화의 험난한 여정을 한결 같이 참을성 있게 걸어가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벼랑은 길의 끝이다. 허공으로 뛰어내리지 말고 돌아서야 한다. 등 뒤에 길이 있는 곳이 벼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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