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소재로 한 사랑의 여정

1995년 6월29일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처음 등장했다. 가슴 시린 멜로 영화로 처참한 사고를 담은 것.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가을로'(감독 김대승, 제작 영화세상)는 그 사고로 약혼녀를 잃은 한 남자가 약혼녀의 체취가 남아있는 전국 곳곳을 돌며 사랑을 추억하는 영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세상에 남겨진 자와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절절한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영화다.

독특한 멜로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로 데뷔했던 김대승 감독이 짜임새 있는 사극 '혈의 누'를 만든 후 다시 멜로 영화에 도전했다. 영혼의 울림이 크다는 점에서 '번지 점프를 하다'와 일견 닮아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당시 사랑을 잃은 남자의 심경에 동화하는 남자 관객이 꽤 많았다. 순정을 잃지 않으려는 남자들의 소망이 담겨 있어서일까.

실제 사건을 소재로 택한 만큼 멜로 영화로 풀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러나 TV 드라마에서 자주 접한 듯한 전형적인 장면들은 영화만이 갖고 있는 장점과 교배되지 못해 영화 자체의 신선함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주연배우 유지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수차례 밝혔듯이 이런 참사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는 충분하다.

유지태가 '봄날은 간다' 이후 모처럼 멜로 영화에 출연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여자, 정혜' 이후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한 김지수가 '로망스'에 이어 자신의 장기인 멜로 장르에 거푸 출연한다.

사법연수원생 현우(유지태 분)와 방송사 PD 민주(김지수)는 결혼식을 불과 한 달 앞둔 행복한 커플. 밝고 맑은 성격의 민주는 연인이면서도 어머니처럼, 누나처럼 현우의 삶을 함께 한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한 현우는 가기 싫다는 민주를 혼수용품이나 둘러보라며 굳이 백화점에 보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우 눈앞에서 백화점이 붕괴되고 민주는 영영 찾을 수 없게 된다.

민주를 잃은 후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현우에게 민주 아버지가 한 권의 다이어리를 두고 간다. 백화점에 있던 민주가 현우에게 선물하려 한 이 다이어리에는 신혼여행 때 찾을 여행지가 빼곡이 담겨 있다. 직업상 여행을 많이 했던 민주가 가봤던 이 여행지에는 현우에 대한 사랑이 함께 묻어 있다.

다이어리에 담긴 대로 여행을 떠나는 현우는 한 여인과 자주 부딪히게 된다. 여행지마다 만나게 되는 세진(엄지원)에게서 민주의 체취가 느껴진다.

어처구니없는 한 사고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뒤바꿔놓는지 아프게 파헤쳐놓는다. 다만 암담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은 보인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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