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88돌 3·1절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청주 상당산성(국가사적 제 212호) 안에 정자가 있는 전통연못이 존재했으나 일제가 이를 한민족 문화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철저히 파괴, 지금의 저수지를 만든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따라 상당산성 저수지를 원래대로 복원, 민족정기를 회복함은 물론 청주지역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8일 지역사가들에 따르면 지난 1764년(영조 40년) 당시 충청병사였던 이태상은 상당산성 지도를 그렸고, 현재 이 지도는 전남 구례 운조루에 보관돼 있다.

▲ 지금은 저수지(윗쪽)로 변했으나 상당산성 옛지도에는 연못과 정자 모습(오른쪽)이 뚜렷히 보이고 있다.
◆ 정자, 육각내지 팔각형 모습지녀= 이 옛지도에는 현재의 상당산성안 저수지 자리에 다각형 모양의 전통연못과 연못섬 한 가운데 육각 혹은 팔각 모양의 정자가 그려져 있다.

특히 연못 둘레는 다각형 그리고 가운데 섬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 전통방식대로 축조된 연못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선시대에는 발(足)처럼 각(角) 진 것은 '땅' 그리고 머리처럼 둥근 모양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생각, 연못도 그 둘레는 다각형 그리고 가운데 섬은 둥근 모양으로 축조하는 사례가 많았다.

◆창덕궁 후원인 '비원'과 매유 유사= 대표적인 경우가 '비원'으로 불리우는 창덕궁 후원으로, 이 역시 연못 둘레는 각진 모습을 하고 있고 그 한 가운데 섬은 둥근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는 한민족 문화흔적 지우고 또 농업 생산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상당산성 전통연못을 철저히 파괴, 관개수로용 저수지로 개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1999년 발간된 상당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는 '일제가 식민통치 기간중 저수지를 만들어 관개를 위한 시설로 바꾸면서 옛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15쪽에서 적고 있다.

◆각각 '연당'·'소요정'이라는 이름도 지녀= 특히 상당산성 옛지도를 확대해 이를 정밀하게 살펴본 결과, 상당산성 전통연못과 정자는 각각 '蓮堂'(연당)과 '逍遙亭'(소요정)이라는 고유이름도 지녔던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연못 둘레와 가운데 섬에는 여러 그루의 능수버들 그림도 그려져 있어, 산성과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빼어난 운치를 지녔던 것으로 밝혀졌다.

99년 지표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산성마을 촌로들이 일제가 전통연못을 파괴해 지금의 저수지를 만들었고 ▶ 그 시점은 해방 전인 1940년도 쯤이며 ▶현재의 저수지 둑방 위로는 남쪽 성벽이 지나갔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상당산성 저수지를 원래 모습인 전통연못으로 복원, 민족정기를 회복함은 물론 청주지역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산성안 전통연못,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 이 관계자는 "일제는 상당산성 연못이 창덕궁 후원인 비원과 매우 흡사하다 보니 한민족 문화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이를 파괴한 후 넓혀 저수지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 저수지 축조라면 빼어난 운치를 지닌 전통연못과 정자를 파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산성 안에 샘이나 우물은 있으나 전통연못이 존재했던 곳은 상당산성이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하다"며 "전통연못과 성벽을 전통 모습으로 복원, 청주 자긍심도 살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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