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신미술관서 10번째 개인전

오늘의 문화인물 (23) 김정희 화가

청주 시내에서 도교육청을 지나 차로 5분여를 가면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휘돌아 안긴 곳이 바로 충북 청원군 남이면 양촌리다.

3차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인 이곳에 봄 햇살 가득 머금고 물감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요 즈음. '미술 경계가 무너진지가 언젠 데 서양화가가 다 무어냐'며 미간에 골을 내는 그는 까칠함과 유함이 공존하는 화가 김정희씨(49)다.

'미술은 양념'이라며 자신을 '살맛나는 세상만들기'의 양념공장 공장장이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 알록달록 꽃밥을 연상시키는 명함을 건네며 싱그러운 양념 제조에 여념없는 그가 오는 3월 9일 개인전을 연다.

'생명'이라는 주제에 '재미'를 보탠 작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9일부터 31일까지 신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건만, 시시각각 변화를 주는 변덕스런 작가의 '재미 예찬' 탓에 작품 팸플릿은 전시기간 중에나 마르지 않은 인쇄향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 양촌리에 있는 작업실. #양촌리에 양념공장을 열고 영락없이 공장을 연상시키는 양촌리 작업실은 신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some·thing'의 전시작품으로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OPP필름(Oriented Polypropylene) 위에 점찍듯 흘러내린 하트모양의 물감과 그 핵으로 자리한 싱그러운 매니큐어들이 코끝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봄기운을 전한다. 그러고 보면 공장장 김정희씨의 양념은 주로 봄에 새로운 맛을 개발해 전하곤 했다. 올해로 꼭 10번째 개인전을 여는 그는 지난 2005년과 2006년에도 '봄나들이'와 '봄'이라는 주제로 걸개그림전을 열었고 이번에도 제목은 다르지만 생명 탄생의 기운 역력한 봄의 메시지를 들고 나타났다. 사실 김씨에게 올해 전시회는 처음이 아니다. 세계미술지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북경의 '798 예술지구(따산즈 예술구)'에 있는 K갤러리의 초청을 받아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전시회를 열었다. 세계 미술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다는 것만으로 고무적인 새해의 출발선을 그은 셈이다. 이번 전시는 중국 전시와 연장선상에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의 작업은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일이 좀더 자유로워 졌다는 것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서 표현에 풍부함이 더해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소재에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세번의 아트페어까지 포함해 13회의 전시회를 열어보이며 부지런한 작품활동을 보인 그는 정작 심심한 대답을 내놓았다. "개인전은 안하면 심심하고 그래서 때가 되면 하는 것이다. 미술은 어차피 소비적인 놀음인데, 냉소적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줄게 없어서 개인전을 한다" 작가의 '재미있는 기획'은 3차 우회도로가 개통하면서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는 지금의 양념공장을 대형 걸개그림이 전시된 젊은 미술가들의 대안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라고 귀뜸했다. ▲ 김정희 作 - 아담과이브(2003)
#생활의 부산물은 변해야 마땅

누군가는 몇십년간 비슷한 패턴으로 작품을 한다지만 변화 자체가 생명인 그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찌보면 변덕이고 어찌보면 호기심인 작품은 곧 생활의 반영이기 때문에 보고 듣고 먹고 마시며 거쳐 나온 부산물인 작품에 변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생활에서 발견하는 재미는 곧 작품으로 직결되고 그 중심축은 곧 변하지 않는 작가다. 김씨는 애초부터 팔릴만한 작품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처음에는 나름대로 구상성을 띤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내 작업의 외도기간이었다."

그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코드는 에로티시즘과 유기체로서의 성. 여성의 유방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거나 정자와 난자 모양의 디테일한 표현들, 과거 태아를 상징하던 곡옥 등의 형상이 생명의 시작이고 기원인 오리진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꼭 해석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유희적 성을 발견하든, 정충을 보며 출세욕에 혈안이 된 사람과 나머지 도태돼 죽고마는 사람을 연상하든 그것은 관람자의 자유다.

80년대 초반 신윤복의 뱃놀이와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유명 그림을 복사해 코리안 팝을 시도했던 초기 작업은 물감 자체도 오브제로 이용됐다. 이유인즉 그에게 그림은 소재와 재료가 아닌 개념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89년에 선보인 설치작품들은 생 날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고 2005년 처음 선보인 걸개 작품은 앞으로 그가 추구하는 작업 경향을 함축하고 있다.

'요즘엔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서로를 생각하며 큰 것에 맞춰 자기를 표현해 나가는 모습이 좋아보인다'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모두 10여 작품의 화사한 설치 및 평면작품과 2003년 제작했던 인간중심적 아담과 이브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가 선보이는 뚱뚱하고 볼품없는 아담과 이브는 '태초에 인간이 부끄러움을 알면서 세상이 아름다워 졌다'는 틀 안에서 서로 선택받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아담과 이브의 초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웃음을 자아낸다. / 김정미

김정희 프로필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87년 서울 관훈미술관과 청주예술관에서의 첫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모두 10번의 개인전과 3번의 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무심회화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충북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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