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대 무용학과 지키며 제자 육성

▲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원대 윤덕경 교수.

오늘의 문화인물(24) 윤덕경 교수

서원대 윤덕경 교수가 올해로 춤살이 40주년을 맞았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무용연구회 25주년을 기념해서는 한국춤의 성과와 과제를 정리한 논문 '한국춤 연구에 관한 맥락적 고찰'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서원대 무용학과의 유일한 교수로 마지막 남은 9명의 예비 졸업생들을 교육하고 있는 그는 교육자이면서 개인무용단 대표로, 또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이면서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의 중심인물로 올해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창무회와 창작춤을 위한 실험

앞만 보고 춤만 추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윤 교수는 자신의 끼를 발산했던 공간으로 창무회를 꼽는다. 이화여대 동문들로 구성된 창무회는 우리춤이 신무용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전통에 뿌리를 둔 창작춤으로 진화해야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1979년 창립 이후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는 창무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윤 교수의 춤살이 40주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단체가 있으니 바로 창무회와 한국무용연구회 그리고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다.

국내 무용계에서 창작춤의 출발점에 섰던 창무회에서 좀더 발전한 것이 1981년 한국무용연구회다. 창작춤에 대한 열정을 학술조사연구와 지역에 기반한 춤 개발까지 다양한 연구영역으로 확장하며 1985년부터는 한국무용제전을 열어 왔다.

창무회 2대 회장을 역임한 윤 교수는 우리춤의 창작 활성화를 위해 활동했던 80년대를 한국 창작무용의 황금기로 설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떠나가는 배'를 안무하며 그 벅찬 감동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윤 교수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청주에 정착한 것은 지난 1989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여성의 머리모양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 '가리마'가 공연된 후 꼭 3년 후의 일이었다.

강인한 한국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윤 교수는 이후 대표적 레퍼토리가 된 작품 '빈산'을 선보이며 우리 창작춤의 자리매김을 위한 새로운 실험에 돌입한다.

"서원대에 처음 부임했을 즈음 김지하의 '빈산'을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기계적인 효과음을 이용해 창작을 했던 창작춤의 르네상스 시기였죠. 청주에서 다시 선보인 것은 90년 무심천에서 였어요."

충북예총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녀는 지난 1993년 황병기 선생이 윤덕경무용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손수 공군사관학교 성무관을 찾아줬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밤의 소리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보이지 않는 문'을 주제로 선보인 공연은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로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해외공연과 작품세계의 변화

무대의 크고 작음을 떠나 관객이 있는 곳이면 안무가는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지론이다.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음악과 안무를 선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라고 전환점이 왜 없었을까.

'혹시 순수예술이라고 부르짖는 춤이 나만의 춤은 아니었을까?'하고 자문하던 1995년 그녀의 작품 세계에도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춤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국회의원도 지내고 본인 스스로 장애인이었으며 소설을 쓰고 있는 이철용씨를 소개받았다.

당시 이씨는 장애인을 복지 개념이 아닌 문화예술로 접목시킨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장애인들에게는 예술을, 비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식 개선 계기를 마련해주자는 것이 단체 설립 취지였다.

"기쁨도 슬픔도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마치 또 다른 춤의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벅찬 감동이 솟았다. 예술계의 정치적 로비 등 당시 무용계에 염증을 느끼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인들을 소재로한 무용을 기획하며 그녀는 직접 수화를 배우고 시각장애인들을 인터뷰하며 춤언어를 새롭게 다져갔다고 한다. 직접 휠체어를 타고 종로를 나가보면서는 장애인들의 고충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96년 발족한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의 개원기념식에서는 '우리 함께 춤을 추어요'를 3일간 아르코 극장에 선보여 높은 관심을 얻었다. 수화로 나레이션을 했던 윤교수는 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벅찬 감동으로 느꼈다고 회상했다. 아름다운 공연은 비장애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깨닫고 편의시설 문제를 지적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메시지가 있는 춤과 마중물

윤덕경의 춤은 항상 메시지가 있었다. 춤살이 30년을 기념해 선보인 '어-엄마 우으섰다'는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엄마의 아픔을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아이와 엄마, 친정엄마가 주인공으로, 여성의 한을 우리 전통춤 씻김굿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인들은 '윤선생이 이상해졌다'며 위태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태평무만 아름답게 추는 춤꾼, 우아하면서도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하는 윤덕경'에서 벗어난 것을 스스로는 진화라고 설명한다.

삶에 대한 긍정은 곧 통찰력으로 이어졌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을 읽고 속리산에서 '고요한 시간 그 깨달음'을 공연했어요. 나이들면서 자연이 보이더라구요. 천천히 걸어갈 때 여유있게 다양하고 많은 것을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충주에서 2005년 공연한 '기쁨도 슬픔도 넘치지 않고' 역시 절제의 미학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올해 윤 교수는 어느해 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한국무용연구회가 25주년을 맡았고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도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2년 후면 20주년이 되는 윤덕경무용단의 내실도 기해야 한다. 그리고 서원대 무용학과의 마지막 졸업생들도 최선을 다해 가르쳐야 한다.

7월에는 한·중·일 세 나라의 무용단들과 함께 일본 군마현(낫타마치, 후지사와, 도쿄)에서 8박9일간 순회 공연을 갖고 10월에는 충북 진천 공연이 계획돼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열린 지난달 창무회 공연에서 '마중물'을 선보였는데 거기에 앞으로 제 역할이 잘 녹아있다고 봐요. 마중물은 펌프질을 할때 먼저 붓는 물을 말합니다. 마중물이 좋아야 다음 물이 맑죠. 저 스스로 무용계 좋은 마중물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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