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유감>

이윤경 / 시인

밖엔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다.
겨우내 거실에 있던 화분들을 베란다에 내놓고 하루 종일 손질 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으로 지치고 굶주림에 힘겹게 생명을 유지해온 것들 어느 것은 물을 너무 주어서 뿌리가 썩고 어느 것은 갈증에 지쳐서 잎이 바삭거렸다. 하나하나 다듬어서 서로 어울리게 놓고 나니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결에 잎을 흔들고 반짝거리며 고마워하는 듯하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을 다시 읽었다.

인생후반기를 정원 가꾸는 일에 몰두하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정원에 있는 나무와 꽃들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써서 보냈다.

1944년 2월 5일자 '로잔느 신문'에 헤세를 찾아온 방문객이었던 글라리세그라는 교사가 쓴 글 '휴가가 끝날 즈음'에는 헤세가 새 정원을 보여주며 모래를 뿌려 놓은 큰길에 주의하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한다.

이 길은 얼마나 멋지고 단단한지 잘 보십시오 이 길에 뿌려 놓은 모래 밑에는 좋은 토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돌을 깔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밑에 멋진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독일 문학 전체입니다.

헤세가 1944년 9월에 막내아들에게 쓴 편지에 '가이엔호펜엔 모래가 많다. 그러나 돌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쓸모없게 된 책들과 수많은 잡지들을 모아서 길 밑에 깔았다'로 믿기지 않았던 그 글이 사실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가 정원 가꾸는 일에 얼마나 열중하고 또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평론을 썼는지도 알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위대한 글들은 정원의 시인 헤르만 헤세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이다.

창밖에는 봄비 속에서 나무들이 꽃잎을 피우려고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다. 이미 꽃망울을 내민 산수유는 노란 부끄러움으로 햇살을 기다리고 젖은 흙속에 촉을 틔우는 각가지 풀들은 얼마가지 않아 들판을 연둣빛으로 꽉 채워줄 것이며 형형색색의 꽃들도 서로 피여서 한 폭의 수채화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은 또 봄을 찬미하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자연의 생성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꾸며 정성스럽게 돌보고 그 즐거움으로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고 쓰는 글이야말로 진정함이 있지 않는가 한다.

도심 속 아파트에 살며 뜰에 있는 나무들이 누구의 손으로 가꾸어지는지조차 관심이 없고 화분을 선물로 받으면 어떻게 키워야 할까 걱정을 먼저하고 바쁜 핑계로 제대로 가꾸고 돌보지 못했다.

아직은 쌀쌀한 저녁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으며 싱그러워진 화분에 푸른 잎을 바라보며 더 이상 그들이 시들고 썩지 않도록 돌보아서 꽃향기를 가득 채운 베란다정원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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